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성순 Aug 01. 2024

곰들의 사보타지

노보리베츠 곰 목장


곰목장 가는 케이블카
케이블카에서 본 전망

곰 목장은 산 위에 있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갔다. 곰 목장의 곰들은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인다. 곰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 공연장으로 갔다. 무대로 나온 덩치 큰 곰은 사회자의 고조된 멘트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어슬렁거리며 나와 느릿하게 돌아다니며 숨겨둔 먹이를 찾아다닌다. 마지못해 이곳저곳을 어정거리며 먹이를 찾아 먹는데 관중의 박수와 환호도 달갑지 않은 듯하다. 재충전이 되기도 전에 아침 출근을 강요당한 샐러리맨 같다. 사육사와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곰을 격려해 보지만 주인공인 곰은 만사가 귀찮다는 태도다. 커다란 엉덩이로 앉아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는 모습은 서툴고 덩치 큰 아이처럼 보인다. 가까이 온 곰의 눈동자를 보면서 괜히 죄책감이 든다. 인간의 호기심과 오락을 위해 곰들의 일상을 침범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갈 그들의 권리를 빼앗아 버린 건 아닌가.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 인간의 야만성을 다시 보는 듯하다. 결국 곰은 먹이 찾기 의무를 팽개치고 곁에 쌓인 눈을 뒤집으며 제 하고 싶은 걸 하니 한참 바라보던 사육사도 드디어 포기한다. 내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밖으로 나와 곰들을 둘러볼 수 있는 탐방로로 갔다. 하얗게 쌓인 눈 여기저기에 흩어져 드러누워 있거나 어슬렁거리는 곰들, 먹이 나오는 구멍 앞에 진 치고 앉아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눈치 빠른 놈도 있다. 눈 쌓인 바위틈에 웅크리고 해바라기를 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아직은 포근한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형의 눈같은 곰들의 눈동자는, 어쩌다 마주치면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드러누운 곰들과 먹이를 노리는 까마귀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카페에서 따듯한 차를 사서 들고 전망대로 갔다. 주변 경치가 내려다보인다. 곰 목장의 왼쪽 멀리 오래된 전설 하나쯤은 품고 있을 듯한 아름다운 칼데라호가 보인다. 호수 주변을 병풍처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들은 눈이 두껍게 덮여 고요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호수의 물이 얼어 햇살에 반짝인다. 그러나 호수의 한쪽이 곰 목장 건물에 가려 아름다운 경관 감상을 방해한다. 흉물스럽게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침범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공구조물만 없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듯하다.


이전 23화 게이샤, 닌자, 사무라이 그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