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노보리베쓰에서 열차를 타고 삿포로역에 도착, 여행용 가방을 코인 라카에 넣고 맥주박물관을 향했다. 날씨도 좋고 멀지 않은 길이라 걸어갔다. 중심가를 벗어나자 차도와 인도 모두 눈이 많아진다. 인도는 한두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을 만들고 양옆으로는 치워진 눈이 담벼락처럼 높게 쌓여있다. 집 옆 작은 주차장에는 치운 눈을 차 뒤로 쌓아두었는데 집 지붕까지 닿은 곳도 있다.
맥주박물관을 찾아가는 동안, 눈 구경과 낯선 동네를 걷는 재미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배가 고파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지나는 길모퉁이에 작은 소바집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실내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오래된 식당임을 보여주는 손때 묻은 도구들과 빼곡히 정리된 비품들, 스무 개 남짓한 좌석들이 자그마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
텅 빈 식당을 지키는 젊은 직원 2명이 밝은 목소리로 우리를 맞이한다. 식당 안의 보송함과 백열전구의 따스한 빛이 명랑한 환영 인사와 잘 어울린다. 따듯한 소바와 닭고기 달걀덮밥을 시켰다. 소바는 넓적하고 굵은 면에 서너 종류의 버섯이 듬뿍 넣어 맛을 냈다. 우동 국물처럼 단맛이 강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으나 딸은 면발이 탱탱하니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동과 덮밥을 바꿔서 둘 다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쉬면서 식당을 둘러보니 벽 위쪽에 식당을 다녀간 유명인 싸인 20여 장을 코팅해서 붙여 놓았다. 얼떨결에 들어온 곳이 맛집이었나보다. 그런데 맛집치고는 그 규모나 식당 모습이 소박하다. 맛집에 유명인의 인증 싸인을 붙여 놓은 건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나서도 규모나 시설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점은 다른 것 같다. 그 식당의 오랜 단골들은 언제 와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거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이들의 특질인가 싶다. 바깥에서 폭설이 온 세상을 삼킨다 해도 이곳에서는 침착하게 식사 준비를 할 것 같다. 그리고 십 년쯤 후에 와본다 해도 크게 변한 것 없이 지금 모습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
맥주박물관은 관광지 특유의 혼잡함과 긴 줄서기, 자리 차지를 위한 눈치싸움 그리고 짧은 맥주 시음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