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눈축제
홋카이도의 눈은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삶의 공간 일부를 눈에게 양보한 채 살아가고 있다. 모두 치우기도 어렵고 치운다 한들 둘 곳도 없다. 그래서 치운 눈으로는 벽을 만들고, 사람이 사용할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한 후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둔다. 거리를 걸으면서 눈 없이 보송한 보도를 디디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가끔 만나는 미끌거리지도, 질척거리지도 않는 보도블록의 마찰력이 얼마나 반가운지.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에 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봤다. 주차장 뒤에는 거대한 눈산이 쌓여있고 사람 다니는 길만 눈이 치워져 있었다. 화단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키 작은 나무는 윗부분만 겨우 보이거나 아예 눈 속에 묻혀있었다. 어떤 건물 외벽에 자전거가 기대어 있는데 손잡이와 안장만 겨우 보이고 나머지는 눈 속에 묻혀있는 걸 보면서 눈의 두께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5~6대의 자전거가 줄지어 있는걸 보니 타고 온 학생들 모두 비슷한 심경으로 가져가길 포기한 것 같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눈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아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삿포로 눈 축제가 아닌가 싶다. 삿포로 눈 축제는 동원된 눈의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1.5km에 달하는 전시장에 거대한 눈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일본답게 애니메이션 관련된 내용의 작품이 많다. 전문가의 솜씨에서부터 아이들 작품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무척이나 크다. 작품을 만들려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할 눈의 양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삿포로시는 눈 축제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눈을 해치우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눈 장벽을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저녁 무렵 호텔에서 산책처럼 걸어 나와 눈 축제 전시장에 입장했으나 두 시간여의 강행군 끝에야 눈 축제 관람을 마무리했다. 추위와 지친 다리로 걸어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탔다. 눈으로 질척거리는 거리도 휑하니 비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