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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눈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

삿포로 눈축제

by 장성순


홋카이도의 눈은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눈 때문에 삶의 공간 일부를 눈에게 양보한 채 살아가고 있다. 모두 치우기도 어렵고 치운다 한들 둘 곳도 없다. 그래서 치운 눈으로는 벽을 만들고, 사람이 사용할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한 후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둔다. 거리를 걸으면서 눈 없이 보송한 보도를 디디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가끔 만나는 미끌거리지도, 질척거리지도 않는 보도블록의 마찰력이 얼마나 반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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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눈을 치운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거리의 인도도 비슷하다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에 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봤다. 주차장 뒤에는 거대한 눈산이 쌓여있고 사람 다니는 길만 눈이 치워져 있었다. 화단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키 작은 나무는 윗부분만 겨우 보이거나 아예 눈 속에 묻혀있었다. 어떤 건물 외벽에 자전거가 기대어 있는데 손잡이와 안장만 겨우 보이고 나머지는 눈 속에 묻혀있는 걸 보면서 눈의 두께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5~6대의 자전거가 줄지어 있는걸 보니 타고 온 학생들 모두 비슷한 심경으로 가져가길 포기한 것 같았다.

IMG_2396.JPG 눈 속에 묻힌 자전거는 주인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IMG_2414.JPG 홋카이도 대학 구내. 차도와 인도는 눈이 다져지고, 그외의 곳은 쌓인 눈이 그대로 인데 많이 쌓인 곳은 높이가 허리까지 온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눈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아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삿포로 눈 축제가 아닌가 싶다. 삿포로 눈 축제는 동원된 눈의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다. 1.5km에 달하는 전시장에 거대한 눈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일본답게 애니메이션 관련된 내용의 작품이 많다. 전문가의 솜씨에서부터 아이들 작품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무척이나 크다. 작품을 만들려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할 눈의 양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삿포로시는 눈 축제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눈을 해치우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눈 장벽을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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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예술적 작품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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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171.JPG 눈축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 크기와 1.5km에 걸쳐 전시된 엄청난 양의 작품

저녁 무렵 호텔에서 산책처럼 걸어 나와 눈 축제 전시장에 입장했으나 두 시간여의 강행군 끝에야 눈 축제 관람을 마무리했다. 추위와 지친 다리로 걸어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탔다. 눈으로 질척거리는 거리도 휑하니 비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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