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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Nov 01. 2023

길고 하얀 구름의 섬, 뉴질랜드(3)

테카포, 와나카 호수

데카포 호수와나카 호수 - 청정한 만년설은 흘러서... 

 데카포 호수는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마치 우리 동네를 마실 나온 듯 느긋한 걸음으로 호숫가를 걸었다.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으나 두꺼운 구름 때문에 옅은 빛으로 흩어지며 거뭇한 물결이 일렁이더니 차츰 햇살이 퍼지며 주변이 밝아진다. 가을바람이 거세게 불어 호숫가에는 작은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빛바랜 덤불은 비스듬히 누웠다. 바람을 안고 걸으며 호수 너머 저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을 바라보니 색다른 가을풍경이다.


호숫가를 따라 좀 더 가면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자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선한 목자교회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소박한 교회의 모습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명상하고 있는 중세의 수도사를 떠올리게 한다. 크고 화려한 교회를 떠나 소박한 삶 속에서 신의 자취를 묵상하는 외진 마을의 수도사. 위대한 신의 세계 앞에 선 연약한 인간의 모습처럼 작은 교회는 거대한 자연 앞에 겸허히 서 있다. 

교회 바로 옆 동산에 양치기 개 동상이 있다. 목자에게는 양치기 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동산 높은 곳에 서 있는 개는 가장 멀리까지 보려는 듯 호수 끝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테카포 호수에서 버스를 달려 와나카 호수로 갔다. 와나카 호수는 더 넓은 호수라 수평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호숫가에는 노랗게 물든 키 큰 나무들이 높은 장벽처럼 서 있고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 하나와 외로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낮게 떠 있는 하얀 구름 두 조각이 나무에 걸려 이 장면을 동화처럼 보이게 한다. 

호수 건너편 구릉 지대에는 옹기종기 마을이 펼쳐져 있다. 곱게 가을 물든 나무들 사이로 나직한 집들이 호숫가에 길게 늘어서 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래서인지 와나카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노후에 가장 정착하고 싶은 곳이라 한다.



 테카포 호수도 와나카 호수도 찰랑거리는 물을 보면 맑기 그지없다. 지구가 청정했던 때 만들어진 빙하가 녹은 물이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호수에는 빙하시대의 물이 보태지고 있다. 이곳은 청정한 물을 무진장으로 가진 나라다.   

  

남섬의 들판 - 천국에서 천국으로

퀸스타운을 향해 가면서 차창을 통해 남섬의 풍광을 감상했다. 구릉 지대는 유럽을 닮은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알프스의 험준함을 닮았다. 그리고 산정상에는 한 조각구름이 내려앉은 듯 만년설이 있다. 

구릉지대가 이어지는 들판에는 체리, 포도를 기르는 과수원과 초지가 있다. 규모가 워낙 커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경작한다. 농장마다 긴 파이프라인이 철봉 정도 높이로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은 삼각형 모양의 다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고 작은 바퀴가 달려있다. 수십, 수백 미터에 달하는 전동식 스프링클러 시설로 넓은 초지에 지하수를 뿌려 준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려 말 권문세족이 산천을 경계로 땅을 차지하니 백성들이 궁핍해졌다'라고 하며 그것은 고려 멸망의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대부분의 농가가 산천을 경계로 하는 대농장 소유주다. 한때는 동전을 던져 호수의 이편과 저편을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는 이토록 삶의 모습이 다르다.

초지에는 소, 사슴, 양을 기르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작고 하얀 양들이 많다. 덩치가 큰 양은 양모를 얻기 위한 것이고 몸집이 작은 양은 식용이다. 양들은 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놀며 잘 길러진 풀을 뜯는다. 한 달 정도 지나 목초지가 오염되면 다른 울타리로 옮겨져 깨끗한 초지가 제공된다. 목초지는 '땅이 오염되면 안 된다.'라는 원칙에 따라 배설물들이 자연정화 되는 1년 정도의 기간을 쉬도록 해 준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면 별도 재배한 채소를 제공받는다.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 양들은 1년이 채 되기 전에 도축된다. 어린 양의 연한 살을 찾는 미식가들의 식탁을 위해 천국으로 떠나는 거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동물들의 생활도 배려하지만, 인간들의 필요에 따라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곳 수사슴들은 한국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는 사슴뿔이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버려진 뿔이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본 한 한국인이 그 효용성을 알리면서 녹용으로 수출도 하고 약품 개발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슴은 뿔 덕택에 유일하게 수컷이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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