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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Nov 01. 2023

천국에서 천국으로

남섬의 들판

퀸스타운을 향해 가면서 차창을 통해 남섬의 풍광을 감상했다. 구릉 지대는 유럽을 닮은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알프스의 험준함을 닮았다. 그리고 산정상에는 한 조각구름이 내려앉은 듯 만년설이 있다. 

구릉지대가 이어지는 들판에는 체리, 포도를 기르는 과수원과 초지가 있다. 규모가 워낙 커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경작한다. 농장마다 긴 파이프라인이 철봉 정도 높이로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은 삼각형 모양의 다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고 작은 바퀴가 달려있다. 수십, 수백 미터에 달하는 전동식 스프링클러 시설로 넓은 초지에 지하수를 뿌려 준다. 

바퀴가 달린 스프링클러.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려 말 권문세족이 산천을 경계로 땅을 차지하니 백성들이 궁핍해졌다'라고 하며 그것은 고려 멸망의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대부분의 농가가 산천을 경계로 하는 대농장 소유주다. 한때는 동전을 던져 호수의 이편과 저편을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는 이토록 삶의 모습이 다르다.

초지에는 소, 사슴, 양을 기르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작고 하얀 양들이 많다. 덩치가 큰 양은 양모를 얻기 위한 것이고 몸집이 작은 양은 식용이다. 양들은 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놀며 잘 길러진 풀을 뜯는다. 한 달 정도 지나 목초지가 오염되면 다른 울타리로 옮겨져 깨끗한 초지가 제공된다. 목초지는 '땅이 오염되면 안 된다.'라는 원칙에 따라 배설물들이 자연정화 되는 1년 정도의 기간을 쉬도록 해 준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면 별도 재배한 채소를 제공받는다.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 양들은 1년이 채 되기 전에 도축된다. 어린 양의 연한 살을 찾는 미식가들의 식탁을 위해 천국으로 떠나는 거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동물들의 생활도 배려하지만, 인간들의 필요에 따라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곳 수사슴들은 한국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는 사슴뿔이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버려진 뿔이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본 한 한국인이 그 효용성을 알리면서 녹용으로 수출도 하고 약품 개발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슴은 뿔 덕택에 유일하게 수컷이 대접을 받는다. 

뉴질랜드는 어디서나 쉽게 양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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