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포호수와 와나카호수
데카포 호수는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마치 우리 동네를 마실 나온 듯 느긋한 걸음으로 호숫가를 걸었다.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으나 두꺼운 구름 때문에 옅은 빛으로 흩어지며 거뭇한 물결이 일렁이더니 차츰 햇살이 퍼지며 주변이 밝아진다. 가을바람이 거세게 불어 호숫가에는 작은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빛바랜 덤불은 비스듬히 누웠다. 바람을 안고 걸으며 호수 너머 저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을 바라보니 색다른 가을풍경이다.
호숫가를 따라 좀 더 가면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자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선한 목자교회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는 소박한 교회의 모습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명상하고 있는 중세의 수도사를 떠올리게 한다. 크고 화려한 교회를 떠나 소박한 삶 속에서 신의 자취를 묵상하는 외진 마을의 수도사. 위대한 신의 세계 앞에 선 연약한 인간의 모습처럼 작은 교회는 거대한 자연 앞에 겸허히 서 있다.
교회 바로 옆 동산에 양치기 개 동상이 있다. 목자에게는 양치기 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동산 높은 곳에 서 있는 개는 가장 멀리까지 보려는 듯 호수 끝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테카포 호수에서 버스를 달려 와나카 호수로 갔다. 와나카 호수는 더 넓은 호수라 수평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호숫가에는 노랗게 물든 키 큰 나무들이 높은 장벽처럼 서 있고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 하나와 외로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낮게 떠 있는 하얀 구름 두 조각이 나무에 걸려 이 장면을 동화처럼 보이게 한다.
호수 건너편 구릉 지대에는 옹기종기 마을이 펼쳐져 있다. 곱게 가을 물든 나무들 사이로 나직한 집들이 호숫가에 길게 늘어서 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래서인지 와나카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노후에 가장 정착하고 싶은 곳이라 한다.
테카포 호수도 와나카 호수도 찰랑거리는 물을 보면 맑기 그지없다. 지구가 청정했던 때 만들어진 빙하가 녹은 물이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호수에는 빙하시대의 물이 보태지고 있다. 이곳은 청정한 물을 무진장으로 가진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