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우타운
퀸스타운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이 높고 가팔라진다.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애로우타운을 들렀다. 19세기, 이 일대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애로우타운은 온종일 광산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허기와 피로를 풀기 위해 생긴 마을이다. 거친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하루를 마무리하며 캐내게 될 금에 대한 기대와 수확한 금에 대한 흥분으로 질펀하게 술 마시며 흥청거리던 곳이었다. 한때는 금광 노동자들로 붐볐을 거리가 지금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금광 촌의 투박한 시끌벅적함은 관광지의 세련된 깔끔함과 생기로 바뀌었다.
마을은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건물들이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마을은 잘 꾸며진 상가, 식당, 옷가게, 기념품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간식 가게들과 약국이나 우체국 등 작은 마을치고는 편의시설이 골고루 잘 갖추어져 있다. 상가가 끝나는 지점 교차로부터는 좀 더 차분한 분위기의 주택가다.
거리 끄트머리 즈음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박물관은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한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람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듯 입구를 지키는 사람도 없다. 일부 보수를 하는지 시설물이 헐려있고 입장객에게 관심 없는 작업자가 지나간다. 유일한 관람객이 된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으로 소심하게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은 어두운 편이었는데 구석진 한쪽 벽에 고문 도구처럼 으스스하게 생긴 목조구조물이 서 있다. 직사각형 상자 형태로 내 키보다 크고 군데군데 녹슨 경첩과 쇠막대기 형태의 장치가 고정되어 있다. 게다가 그 옆 유리 진열장 안에는 치아를 뽑던 집게와 접시에 가득 사람 치아가 담겨있다.
나중에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다 그 기계의 명칭이 찍힌 걸 발견했다. 'SCREW WOOL PRESS' 그것은 깎은 양털을 압축해 포대에 담는 수동식 기계였다. 내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연결 짓기로 공포물을 창조해 낸 것이다.
전시관 안쪽에는 당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바깥으로 난 창문에서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창밖으로는 노랗게 물든 이파리와 빨간 열매를 단 나무가 보이는데 창가에 놓인 유리그릇들의 반짝임과 어우러져 금광 시대의 화려함을 슬쩍 보여주는 듯하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서 거리를 거슬러 올라왔으나 주어진 자유시간이 넉넉하다. 마을 뒤편 계곡으로 가는 계단이 보여 따라 내려갔다. 습기를 머금은 서늘한 기운이 훅 밀려온다. 공기의 색깔이 달라진다. 그곳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바로 옆 상가의 생기 찬 소음과는 상반된 차분함 속에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선 산은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이고 산그늘 아래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계곡 바닥에는 자잘한 자갈이 깔려있고 물은 낙차도 거의 없이 개울물처럼 평온하게 흘러간다.
계곡 옆 둔치에도 예쁘게 단풍 든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개울은 산자락을 감돌아 그 숲 속으로 사라진다. 숲 속 그늘 어디쯤에서 연장을 둘러맨 19세기의 광부가 나타난다 해도 놀랍지 않을 듯하니 이곳이야말로 옛 애로우타운의 정취를 간직한 유일한 곳이 아닐까?
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휩쓸고 간 뒤 쇠락하던 마을은 지금 추억을 파는 관광지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동안 수많은 인간 군상이 머물다 사라지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과 계곡과 물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의연히 지켜볼 뿐이다. 지금은 지구 맞은편 북반구에서 온 낯선 손님을 마주하고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중이다. 그 손님은 하릴없이 '산천은 의구하되 광부들은 간데없네'라고 시조를 바꿔 불러본다. 돌 위에 앉아 숲을 바라보며 물소리, 바람 소리에 취한다. 문득 어둑하게 그늘을 드리우며 사라지는 숲 속 산책로를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곧 관광객의 본분으로 돌아와 시계를 들여다보고 모이기로 한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뉴질랜드 관광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호키포키 아이스크림을 샀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달고나 조각을 듬뿍 넣으면 비슷한 맛이 날 듯하다. 몹시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