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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Feb 23. 2024

 자연을 빌려 쓰는 사람들

   거울호수와 호머터널


퀸스타운에서 밀포드사운드까지는 긴 시간 이동을 해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산의 모습이 우람하고 거칠어진다.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며 깨어나고 있는 거인들 같다. 높고 가파른 경사를 가진 산은 대부분 거대한 바윗덩이로 형성되어 있다. 푸르게 숲이 우거진 곳이 있는가 하면 황량하게 바위가 드러난 곳도 많다. 

버스를 달려가다 거울 호수에 들렀다. 반영(反影)이 아름다운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가 몇 개 연이어 있고 좁은 데크를 걸으며 볼 수 있다, 데크 주변은 나무들이 무성한 데다 아침 산 그늘이 드리우고 있어 반영이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우거진 나무의 짙은 그늘 속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호수는 이른 아침의 신선한 습기를 머금고 있다.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한 채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거울 조각처럼 흐릿한 물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거울호수의 반영
남쪽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서


거울 호수를 거쳐서 밀포드사운드를 향해간다. 정지 신호를 받은 차가 한참을 서서 기다린다. 호머 터널 앞이다. 이 터널은 한 개 차선밖에 없어서 내려가는 차선의 초록 신호등이 켜지면 터널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차들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호머 터널은 바위산을 수작업으로 쪼아 만든 터널이다. 그래서인지 거칠게 떨어져 나간 자연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구간도 있다. 터널 내부는 흐릿한 조명뿐이고 마감되지 않은 건물 내부처럼 거칠고 축축하다. 어두운 데다 완만한 경사까지 있으니 오래된 갱도를 달리는 것 같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관광객이 늘어나 차량통행량이 많아졌음에도 확장하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사용한다.

호머 터널을 나오면 지척으로 다가온 거대한 산을 볼 수 있다. 버스에서 고개를 한껏 젖혀야 산 정상을 볼 수 있다. 차창 바로 옆으로 보이는 산이 워낙 크고 숲이 울창해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면 거인이라도 나타날 듯한 분위기라 감탄을 하며 보고 있는데, 바로 '킹콩'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 한다.

이곳은 비가 많아 식물들이 빨리 자란다. 그러다 보니 바위산인데도 이끼를 토양 삼아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나 울창한 숲을 이룬다. 폭우가 쏟아지면 지반이 약해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는데 큰 나무들이 쓰러지며 도미노 현상으로 나무 사태가 난다. 그로 인해 도로가 막혀 교통통제가 잦다고 한다. 수직 절벽을 이루고 우뚝우뚝 서 있는 산들의 행렬을 보면 그럴만하다 싶다. 

 강수량이 많아서 폭포도 많다. 깎아지른듯한 바위산과 초록으로 뒤덮인 거대한 산 중턱에 흰 비단실 타래를 늘어뜨린 듯 가느다랗고 긴 폭포 줄기가 그림처럼 떨어지고 있다. 판타지 영화의 배경 같다.

거대한 산 중턱에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걸려있다

자연의 원시적 모습을 그대로 지키려는 이 나라 사람들의 의지는 존경할만하다. 오래된 터널이나 좁은 도로를 확장하지 않는다. 이 일대 국립공원 대부분 지역을 출입금지지역으로 정해놓고 제한적으로 트래킹을 허용한다. 대표적 토종 식물인 마누카 군락지를 보호하고 광고판 하나도 허투루 세우지 않는다. 자연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며 현세대는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보다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들의 가치관과 그것이 허락되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남섬의 원시림과 웅장한 산맥의 장관은 이들의 이런 태도와 노력으로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촬영된 '반지의 제왕'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고대 판타지 세계를 실감 나게 구현해 많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현재 뉴질랜드 관광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반지의 제왕'과 관련된 것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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