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사운드
밀포드사운드 해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크루즈선을 탔다. 선상에서 제공하는 뷔페식 점심 식사를 후딱 해치우고 갑판으로 나간다. 갑판에 서면 휘청일 정도로 바람이 불고 햇살이 강한데도 다들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와 있다.
선착장은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에 자리 잡고 있다. 만의 양쪽에는 수직으로 높게 솟은 산들이 이어져 두 팔을 벌려 안듯 길쭉한 만을 만들고 있다. 해안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산들은 설악산의 울산 바위를 떠올리게 한다. 울산바위가 기품 있는 노인이라면 이곳 바위산은 거칠고 황량하지만 씩씩한 청춘의 모습이다.
배는 느린 속도로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곳곳에서 만국 공통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한 곳에 시선이 쏠려 유심히 살펴보니 물개 가족 세 마리가 바위 위에서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흥분된 관심에도 그저 일상이라는 듯 지나가는 배를 무심히 쳐다본다.
갑판 맞은편에서 나직한 탄성과 웅성거림이 들려 달려가 보니 돌고래 두 마리가 물 위를 오르내리며 배와 나란히 수영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아한 몸짓으로 물살을 가르던 녀석들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진다. '손님맞이는 이 정도로….'라고 하는 듯하다.
이곳은 인간과 동물이 나란히 살아가고 있다. 모든 배는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항해하며 자연을 변형시키는 어떤 구조물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만든 U자곡의 거대하고 우아한 곡선과 뽀얀 물방울을 흩날리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 풍경 속 동물들도 왜곡되지 않은 자연의 삶을 누리고 있다. 인간이 야생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서로의 만남은 덤덤하지만,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야생은 인간의 놀잇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배가 만의 끄트머리까지 나아가자 앞이 탁 트인 난바다가 펼쳐지고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비늘이 수평선까지 이어져 마음이 아득해진다. 배는 뱃머리를 돌려 맞은편 해안선을 따라 돌아오며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만의 북쪽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폭포가 좀 더 많다. 수량이 많아 바다로 곧장 쏟아지는 것도 있고, 가늘고 길게 내려오다 산 중턱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도 있다. 문득 여산 폭포를 노래한 한시(漢詩) 한 구절이 떠오른다.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날아가듯 흐르는 물이 삼천 척을 쏟아져 내리니
하늘 저 멀리서 은하수가 떨어지는 게 아닌지
이백은 폭포 주변에 뽀얗게 일어나는 물안개를 보며 은하수를 상상한 것일까?
햇빛에 반사되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무지개와 아침 안개처럼 훅 밀려와 몸을 감싸는 폭포의 습기를 느낀다. 늘 자연을 사랑하고 노래한 이백이 이곳을 봤다면 선경(仙境)이라 하지 않았을까?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