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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Mar 13. 2024

길고 흰 구름의 섬

        아오테아로아

아오테아로아는 마오리어로 '길고 흰 구름'이라는 뜻이다. 14C 경 폴리네시아 지역에 살던 마오리족 한 무리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났다. 긴 항해 끝에 구름에 가려진 이 땅을 발견하고 '아오테아로아'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마오리어 명칭은 ‘길고 흰 구름의 섬’이다. 이렇게 서정적인 국호를 가진 나라에는 착한 사람들만 살 것 같다. 다른 나라들도 ‘흰 곰이 거니는 툰드라’나 ‘해오라기 깃든 삼나무숲’ 같은 이름을 지으면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생각을 해본다.

뉴질랜드에는 마오리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하고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에서는 마오리어와 마오리 전통춤인 하카를 가르친다.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승리의 의지를 다지며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하카춤을 추기도 하는데 같이 간 뉴질랜드 선수들은 호응해 주며 함께 즐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주 유럽인들이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계승하려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물리적 힘과 문화적 우월감으로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았다. <<총. 균. 쇠>>에서는 ‘인류는 우월한 종이 아니라 더 나은 지정학적 환경 때문에 앞선 문명이 생겼다. 그들은 침략자가 되어, 무기와 전염병 그리고 야만적 폭력으로 고립된 지역의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절시켰다’라고 한다. 그 예는 아메리카 인디언등 인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뉴질랜드의 경우는 특별하다. 국가는 특정 부분에서, 원주민이었던 마오리족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특혜를 주기도 한다. 마오리족은 낙천적인 미소와 당당한 자부심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건장한 체구와 폴리네시아인 특유의 건강한 피부색, 활기찬 태도가 어디서든 눈에 잘 띈다. 인접한 호주의 원주민 애버리진이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그들의 문화는 거의 사라져 버린 것과 대비된다. 

 

와카레와레와 민속촌도 마오리족이 모여 살던 곳을 관광지로 운영하고 있다. 마을 입구부터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개울물에서 김이 오르고 개울가 흙은 불그스름한 색이다. 바위틈에서는 간헐천이 솟아오르고 있는데 가끔은 수 미터까지 치솟아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지열이 강한 곳에는 움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열로 생선, 채소, 육류 등을 익혀 먹는다.  마오리 전통요리법으로 항이식 요리라 한다. 마을의 지열이 강한 곳 근처에서는 항이식으로 쪄낸 옥수수를 잘라 인심 좋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금방 쪄내서 뜨거운 김이 오르는 걸 먹으니 꿀맛이다.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민 목각인형은 위협적이라기보다 해학적이다


마을 길을 따라 좀 올라가니 의외로 조용하다. 아담한 집들 창문을 통해 안을 보면 삶의 흔적은 보이나 정작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다들 일하러 나간 동네에 약속 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나는 마을 길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간다. 골목 끝에는 우리나라 장승과 흡사한 목각인형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숲 덤불에 숨어서 지켜보는 목각인형은 하카를 출 때처럼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어 위협하는 표정이지만 장난스러움이 배어 있다. 우리나라 민화 ‘까치와 호랑이’이 등장하는 덩치 큰 호랑이의 해학적인 모습과 장승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마오리 문양으로 치장된 집과 지열을 이용하는 생활 방식,  이질적인 듯 보이는 자그마한 교회,  이곳은 마오리족의 과거의 삶이 있었던 곳이고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민속촌 내의 작은교회와 가끔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화산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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