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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Jul 06. 2024

춤추는 전사 마오리의 사랑 노래

로토루아

로토루아 숙소 근처는 온통 유황 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지열 활동이 현재진행형이라 곳곳에서 온천이 솟아난다. 

늦은 저녁 폴리네시아 스파에 갔다. 따뜻한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둔덕에 팔을 괴고 드넓은 호수를 바라본다. 호수에는 점차 어둠이 내리며 물빛이 짙어진다. 호수 위를 낮게 날던 새들은 어디론가 바삐 날아가고 별조차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위에는 옅은 안개가 깔린다. 야외온천의 밝은 조명 아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온 세상이 어두워지는 걸 보면 마치 무대에 서서 넓은 관객석을 보는 기분이다. 오늘의 관객은 진중하고 우수에 찬 퇴역군인처럼 서늘한 바람을 일으켜 내 이마를 서늘하게 한다.

북섬의 호수

   저녁은 호텔에서 항이식 디너와 함께 마오리 민속공연을 즐겼다. 전통의상과 얼굴 타투를 한 마오리들이 나와 전통춤 하카를 추는데 적을 위협하는 부릅뜬 눈과 표정이 특이하다.

옛날 마오리족은 외부인과 만나면 체격이 크고 험상궂은 사람을 내보내 하카춤을 추었다. 자신들의 상징인 은고사리를 바닥에 놓고 싸울 것인지 우호적 관계를 맺을 것인지 결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은고사리를 손으로 들면 우호의 표시로 간주하여 코를 맞대는 인사를 하고 환영식을 벌인다. 발로 밟으면 전쟁이다.


 

공연 중 체격 좋은 여가수가 나와 귀에 익숙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모닥불과 통기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 손뼉 치며 신나게 부르던 노래다. 그런데 지금은 느리고 애잔한 곡조로 불리는데 언어의 경계 없이 슬픈 정서가 느껴진다. 이 노래에 담긴 마오리 설화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먼 옛날 로토루아의 호수 주변에 마오리 부족들이 흩어져 살았다. 어느 날 한 부족장의 딸 히네모아는 호숫가를 거닐다 아름다운 피리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피리 소리에 이끌려 뗏목을 타고 호수 가운데 있는 섬으로 갔다. 거기서 피리를 연주하고 있던 트타네카이를 본 순간 둘은 사랑에 빠졌다. 트타네카이는 사랑을 담아 피리를 불고 히네모아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뗏목을 저어 섬으로 갔다.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추장은 딸을 막기 위해 뗏목을 모두 없애버렸다. 뗏목을 찾지 못한 히네모아는 칡넝쿨로 표주박을 몸에 달고 먼 거리를 헤엄쳐 사랑하는 이를 찾아갔다.  그러나 비바람이 심하게 치는 날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는 넓은 호수 때문에 만날 수 없었던 연인들의 간절한 사랑 노래이다.


이 설화는 마오리의 민요로 구전되어 오다가 지금은 민속공연에서 불린다. 여가수가 부르는 애절한 선율은 여행 중 보았던 아름다운 호수들과 겹쳐지며 긴 여운을 남긴다.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로토루아 시내와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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