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비튼 가든
영화 속 호빗 마을은 언제나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환한 빛이 쏟아지는 초록 동산에는 빨강 노랑꽃들이 피어있고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잔잔한 연못 한 귀퉁이에서는 평화롭게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동그란 문 옆 굴뚝에서는 연기가 한가롭게 피어오른다.
밝고 사랑스러운 호빗 마을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투어를 기다렸으나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마을로 가는 전용 버스를 기다리는데 비는 더욱 심해져 비바람이 몰아친다. 잠시 기념품 가게로 피신을 했다. 규모가 작고 기념품들도 소박했지만, 한쪽 구석에 내가 좋아하는 간달프가 서있었다. 실제 사람 크기의 모형인데 반가워서 팔에 손을 슬쩍 얹고 사진을 찍었다. 간달프 망토를 구경하고 간달프 소형 등을 샀다. 작은 가게에서 얻은 작은 기쁨이다.
전용 버스를 타고 호빗 마을에 들어갔다. 동산 곳곳에 동그란 문을 얼굴처럼 내민 집들이 자그만 창문을 닫은 채 있고 집 앞에는 소형 농기구들이나 작은 의자, 커다란 호박이 소품처럼 놓여있다. 햇볕이 쨍했으면 실감 나게 보였을 빨랫줄에 널린 호빗 옷들은 비에 젖어 처량하게 펄럭인다.
호빗들은 비바람에 놀라 모두들 숨어버린 듯 마을에는 구경꾼들만 시끌하다. 호빗들이 맨발로 돌아다니던 마을 길들을 한참을 걸어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간달프가 마차를 타고 들어오던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도 건너고 빌보의 생일파티가 열린 마을 공터도 지나가고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집들도 하나하나 방문해 본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동산 중턱쯤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비로 시야가 흐리기는 하지만 연못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낮은 언덕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마을에 있는 호빗 주막에 도착했다. 무료로 맥주와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북적이며 시끌시끌하다. 여럿이 모여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구석진 곳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 오직 상대방만을 눈에 담고 바라보는 한 쌍의 연인, 잔뜩 들떠서 이곳저곳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아이들까지 진짜 주막 같은 분위기다.
맥주 한잔을 들고 바로 옆 천막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다. 대형 천막 안에 손때 묻은 원목 식탁과 의자가 있고 잔칫집처럼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쇠고기를 큰 덩어리로 구워 즉석에서 칼로 빚어주는데 맛도 있고 운치도 있다. 잔칫집 같은 식사가 끝나고 기념품 머그잔을 준다. 호빗들이 맥주를 담아 먹었을 것 같은 독특한 모양이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보는 호빗 마을은 여전히 뿌옇게 흐린 대기 속에 있다. 오늘 내가 본 호빗 마을은 영화 속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추억일 수도 있다. 삶이 늘 맑음일 수는 없다고, 사랑스러운 호빗 마을에도 비가 오듯이 우리의 삶에 햇빛과 비와 바람이 함께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그래야 가끔은 무지개도 볼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