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우드 삼림욕장
싱싱한 초록으로 가득 찬 공원, 불그스름한 낙엽이 깔린 길은 푹신하다. 긴 시간의 더께를 발로 느끼며 나무들의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춰본다. 은은하게 퍼지는 신선한 나무 향과 엉클어진 덩굴을 흔드는 축축한 바람 속에는 그들만의 익숙함이 스며있는 듯하다. 우리는 늘 이러했다고, 당신들이 와서 새로움으로 만난 거라고, 그러니 새로움으로 가득 채워 신선해져서 돌아가라고. 나무들은 오래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숲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 축축하고 서늘해진다. 어디선가 비릿한 공룡의 체취가 퍼져나가고 있을 듯도 싶다. 산책로를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주변이 어둑해진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나무들이 해를 가려 날씨와 시간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곳은 <쥐라기공원 2, 잃어버린 세계>를 촬영한 곳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들을 순식간에 왜소한 생명체로 만들어 버렸던 압도적 크기의 나무들이 곳곳에 보인다. 키 큰 나무 사이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짓밟고 지나갔던 양치식물들이 무성하게 다시 자라고 있다.
자연 상태를 잘 보존한 이곳의 유일한 인공구조물은 아이들을 위한 모험놀이용 로프 다리다. 산책로 가까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상 7~8m 정도에서 수평이동하는 코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나무 손상을 막기 위해 나무 둘레에 두꺼운 헝겊을 감싸고 로프를 묶어서 연결하는 정성을 기울였다.
깊은 숲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의 순환을 느릿하게, 쉼 없이 진행하고 있다. 인간들이 지구의 모든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시점에 이곳은 참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의 느릿한 호흡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