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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순 Mar 10. 2024

빛의 섬, 아이슬란드(3)

          오로라 헌팅투어


낯선 빛을 찾아 나서다. 

첫 만남은 제대로 바람을 맞았다. 세워놓은 삼각대가 불안할 정도로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래 기다렸으나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러 대의 버스가 몰려와 내려놓은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하릴없이 등대나 어둠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수다를 떨었다. 기다림에 지쳐 버스들은 한 대 두 대 해안을 떠나고 마지막까지 버틴 우리 버스도 결국 패잔병처럼 철수했다.

두 번째 만남은 다들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오로라 지수도 높고 오로라 지도로 볼 때 아이슬란드 남쪽으로 내려온 게 확인되니 구름이 덜한 곳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래서 도시 외곽의 낮은 언덕 아래 여러 대의 버스들이 다시 모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더니 결국 버스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우리 버스 기사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외진 해안으로 달려갔다. 우리나라 황태덕장처럼 생선을 말리는 곳이었는데 한참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어두운 하늘의 별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오로라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확인하며 안 일이지만 그곳에 오로라는 와 있었다. 사람의 눈으로 찾아내지 못한 오로라의 흔적을 카메라는 담고 있었다.

강원도 황태 덕장과 많이 닮은 곳.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카메라는 오로라를 담았다

만남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버스가 대로변에 서더니 기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이드와 얘기를 나눈다. 드디어 오로라가 나타난 것이다. 버스를 갓길에 대고 내렸다. 깊은 잠에 빠져 조용한 낯선 동네 어귀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하늘에서 얇은 비단을 던진 듯 내려와 살랑이더니 슬며시 사라지고 큰 원을 그리며 나타나 아래로 빛을 뿌린다. 그러나 시간도 짧았고 어울리지 않는 배경 때문인지 그저 신기한 경험을 했구나 싶었다. 

세 번째 만남에서야 그의 참모습에 가 닿았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가슴에 오래 담길 경험이었다. 그 만남을 위해 버스는 어둠 속을 달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삼라만상이 고요히 잠든 들판, 온 세상은 검은 장막이 휘둘러 쳐지고 지평선조차 하늘과 합쳐져 눈 닿는 곳은 모두 검은 하늘이다.


거대한 화폭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


그것은 도착의 신호도 없이 살그머니 그리고 아주 흐릿하게 시작되었다. 첫눈 오는 날의 진눈깨비처럼 오는지 아닌지 의심스럽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점점 명확해지고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지듯, 문득 하늘을 채우는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것은 강렬하다기보다는 절대 정적 속 여린 떨림처럼 온 마음을 모아 바라보게 만들고 어느 순간 탄성이 나오게 한다. 광활한 대지와 끝 간 데 모를 먼 지평선 위에서, 어둠으로 꽉 찬 넓디넓은 화폭 위에 그려지는 신비한 빛의 그림들. 서서히 나타나 일렁이며 휘감기고 펼쳐지고 길게 뻗어내린다. 하늘 저 끝에서 땅을 향해 달려오듯 빛 타래를 늘어뜨리고 느리게 흔들리며 감아올린다. 그리고 웅장한 종소리의 흐린 여운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고개를 돌리면 문득 맞은 편 하늘에 다시 나타난다. 그 움직임은 자유롭고 걸림 없으며 매 순간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보여준다. 

선명함이나 색상의 화려함으로 보자면 영상을 통해 봤던 오로라가 더 아름답다.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 촬영을 하면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멋지게 촬영된 오로라도 직접 현장에서 보는 감동에 비할 바 아니다. 광막한 어둠의 공간에 서서 낯선 북국의 바람을 맞으며 자연이 펼치는 공연을 보는 건 감동 이상의 어떤 것, 낯선 두근거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방향을 맞춘 후 리모컨을 눌리기만 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홀린 듯 오로라 바라보기에 열중했다. 찍을 기회도 한 번이지만 볼 기회도 한 번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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