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토모 동굴
남섬 퀸스타운에서 북섬 오클랜드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정도 거리다. 밀포드사운드의 장대한 자연경관이 머릿속에 남아서인지 오클랜드 공항에 내리자 산속 생활을 하다 도시로 돌아온 느낌이다. 북쪽으로 한참 올라와 온화한 기후를 만나니 ‘아, 이곳 사람들은 따듯한 북쪽 나라라는 표현을 쓰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때에서야 잠시 사람들 각각의 머릿속에 얼마나 다른 생각들이 들어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북섬 첫 여행지는 와이토모 반딧불 동굴이다.
와이토모 동굴 입구는 여느 석회동굴과 비슷하다. 석회석이 흐르는 물에 녹으며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특이한 형태의 벽면과 종유석을 볼 수 있다. 서늘한 기운을 따라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제법 큰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는 동굴을 따라 물길을 만들고 있고 모험 떠나기 좋을 듯 보이는 배가 어두운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배를 타고 동굴 깊이 들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천정과 벽면에서 흐릿한 빛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한 굽이도는 순간 그 빛들이 동굴 천장에 가득하다. 동굴 천장의 가장 위쪽에 반디 벌레들이 촘촘히 모여 긴 띠를 이루고 있고 그 주변에 점점이 흩어진 빛이 천장을 채우고 있다. 동굴 곳곳에 박혀있는 작고 희미한 빛들을 보면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에 별들을 흩뿌려진 듯하다. 인공의 빛이 차단된 동굴 안에서 벌레가 내는 희미한 빛이 물 위로 은은하고 부드럽게 퍼진다.
배는 설치된 줄을 당겨 소리 없이 천천히 움직인다.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숨죽이고 동굴의 고요함을 지킨다. 종유석에서 동굴호수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자연의 악기를 연주하듯 경쾌한 음을 만든다. 짙은 어둠 속의 희미한 반딧불 빛과 고요 속 작은 물방울 소리, 서늘한 냉기.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수만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먼 옛날 반디 벌레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고 어느 날 사람들 손에 의해 동굴이 열렸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광경을 대면했을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낯선 생명체를 위해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소리를 죽이고 인공적인 빛을 들이지 않아 반디 벌레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했다.
이런 태도는 시공간을 공유하며 살아야 할 중생들끼리 의당 지켜야 할 도리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 감동적이다. 그래서 그 여린 벌레들은 지금도 천년의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었다.
반디 벌레가 모여있는 거리는 길지 않아 금세 출구가 보인다. 그 아쉬움을 아는지 출구 가까이 갔던 배는 잠시 뒤쪽 어둠으로 다시 들어가 여유를 부리다가 천천히 출구로 나가 관광객들을 내려준다. 20대의 마오리 젊은이들이 배를 끌고 있는데 체구가 튼실하고 인물이 훤하다. '어땠어요? 볼만한 광경이지요?'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다. 와이토모 동굴과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와이토모 동굴처럼 마오리족에 의해 운영되는 관광지가 종종 눈에 띈다.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은 애초에 마오리족의 것이었다'라는 전제하에 천연자원에 대한 우선권을 마오리족에게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