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타운
애로우타운에서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에 키와라우 다리 번지점프대를 들렀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씨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번지 점프대를 바라보는 지점에 모여 있다. 점프대에는 젊은 여자가 이미 뛰어내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로 돌출된 점프대까지 나와서 서성인다. 까마득한 높이를 가늠하며 대리만족을 느껴보려는 나는 다른 관객들처럼 기대에 차서 여성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망설이던 도전자가 디딤대에서 돌아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온다. 잠시 후 도전자가 다시 점프대로 나온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격려하고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You can do it"을 합창한다. 도전자는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불안한 모습이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푸르른 계곡물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보리라는 도전을 결심한 마음도 사라지고, 43m라는 공포스러운 높이만 눈앞에 놓여 있는 듯했다. 그녀는 결국 돌아서서 보호장구를 벗었다. 점프대 끝에 선 그녀의 두근거림을 함께하던 나와 그녀만큼이나 아쉬운 마음을 함께 한 여러 관객들은 비에 젖은 계곡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와카티푸호수 주변은 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퀸스타운의 주택지는 와카티푸 호수를 내려다보며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모습이 군림하는 듯하다. 전원풍경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보이던 와나카와는 대조적이다.
산 아래 호수 주변은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된 도로와 현대식 건물의 상가가 있다. 상가 건물들은 특색 있고 예쁘게 지어져 거리를 돌아다니며 건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들은 상가를 기웃거리며 쇼핑을 하고, 길가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서로를 구경한다. 나 또한 골목골목을 다니며 거리와 상가와 사람들을 구경하다 지쳐 호숫가로 갔다.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경계석 위에 주저앉아 있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수다를 떨고 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두세 척의 모터보트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속도감 있게 달리고 있다. 배에 탄 관광객들의 즐거운 비명이 호숫가에서도 들린다. 한참을 서서 물결치며 어두워지는 호수를 바라본다. 물새들이 바쁜 날갯짓하고 바람은 차가워진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식당들의 불빛이 점차 밝아지며 어둠이 내린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도 불빛을 밝히기 시작한다. 이제 낯선 숙소로 들어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