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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는 시간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 있다

by 규린종희

새벽에 내리는 커피는 먼 도시로 가는 첫차만큼 좋다. 설 연휴 첫날이었지 싶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동안 어둠이 꿈틀거렸다. 리조트 수영장 물소리에 일어서는 새벽이 천천히 나를 흔들었다. 자연이란 의지가 아니라 그 자체의 흐름인가. 저마다의 고유한 본성으로 흔들리어 꿈틀거리고 그 틈으로 마침내 신시가 열린다

수코타이의 아침 커튼을 젖히고 문을 열었다. 먼저 나선 눈길을 따라 첫발을 문밖으로 냈다. 밤의 온도를 간직한 바닥이 찹찹하다. 지난밤 나는 그 온도를 걸어왔다. 어둠을 고물처럼 묻힌 새벽이 밤의 바닥을 딛고 발바닥으로 들어왔다. 종아리 근육이 밀어 올리는 아릿함이 감각을 자극했다.

감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감성이 말라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늙음의 전조였다. 지난 몇 개월을 나는 그 전조와 씨름하고 있었다. 촉수를 거둔 감각에 힘을 뺀 감성은 나를 단지 숨 쉬는 물질로 만들었다. 스코타이의 새벽, 발바닥을 타고 들어온 감각은 그런 전조를 강렬하게 밀어내고 있다. 물질로서의 육체를 깨워 감각으로서 몸으로 일으킨다. 밀봉한 항아리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진지함으로 나는 나를 천천히 읽었다. 릴리와디의 진한 향기에 몸이 결박당한 듯 혼미했었다

수코타이 역사적 폐허에 서면 망막에 새긴 형상말고 심상에 새겨질 영감을 만나고 싶었다. 그날도 아침을 먹기 전 커피를 내렸다. 첫맛에 집중했다. 낯선 도시의 처음처럼 모든 순간의 처음에 나를 세우리라. 새소리의 처음은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부리에 있다. 아니다 새의 깊은 몸 어디쯤이다. 관념과 물질이 아닌 존재의 본성에 그 시작이 있었다.

형상이전의 아릿한 꼬물거림... 나는 엄마아버지의 아릿함으로 형상을 얻었구나. 형상을 주고 사라진 두 분은 다시 아릿함으로 나를 받치고 있음을...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영원한 형상도... 있고 없음의 인식밖의 일임을... 커피의 첫맛이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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