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說(야매소설)

파라다이스는 그 순간에 고여 있었다. 2

by 규린종희


공항은 북적였다.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긴장감이 무색할 만큼 이른 시간임에도 어디에나 긴 줄이다. 탑승장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정을 살펴보았다. 두 번의 강의, 예약한 호텔로 가는 버스 그리고 제주의 날씨를 꼼꼼히 체크했다.


이번 강의는 지금까지 해온 강의 주제와는 달리 변화를 주었다. 팬데믹 시대 우리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이다. 기존 심리학 강의에서 사이사이 다루었던 소주제에 관심을 보였던 시인이 초청한 강의라 나름 세심한 준비를 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문학, 일상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정이라는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 팬데믹... 서로의 생존시그널을 보내는 짧은 메시지는 오히려 메타버스 시대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아 어쩌면 그것이 먼 훗날 팬데믹하이쿠란 장르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그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으며 모든 경험은 지식으로 남아 훗날 지혜가 되겠지. 중세를 종식시킨 문학처럼...


여행은 그 자체가 세상이라는 책을 걷는 일이다. 나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 세상을 향해 걸어간다. 아침 태양이 등 뒤에 있다. 위로 갈수록 세상은 넓고 나는 먼지 같은 점이 된다. 한 점이 되는 것ᆢ, 한 점으로 흩어지는 건 삶도 다르지 않겠지. 한 점 언어가 되어 문장을 만들어 가듯, 제주의 바다로 문장을 만나러 간다.


휴대폰의 노트 기능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수첩을 꺼내어 글을 썼을 텐데 이젠 휴대폰에 톡톡 글자를 찍으며 글을 쓴다. 어디에서든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한 번 더 보게 된다. 책을 펼치는 모습,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보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순간순간 떠오른 단어들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메모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해가 뜨는 동쪽을 등 뒤에 달고 남쪽으로 간다. 광휘로 붉은 구름의 정수리를 본다. 달의 얼굴을 보며 뒷면을 읽듯이 구름의 정수리를 통해 구름아래를 상상한다. 제주에서는 나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리라. 독서, 글, 커피 ᆢ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그 자체로 오롯이 나로 있어야겠다. 그가 보내온 메시지를 열어봤다.


- 강의를 마치면 허니문하우스,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밤섬을 돌아오는 바람맞으면서 생각할게요 흐흐...

-내 생각은 하지 말아요. 그냥 놀아요. 무엇을 하는지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게 좋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서운하게 들렸다. 그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갔다. 건축학개론으로 알려진 위미해변의 팽나무집 카페... 우연처럼 필연으로 만나게 될 어떤 운명 같은 사람을 기대하면서 갔던 카페. 출입문 첫 번째 테이블 왼쪽 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그가 먼저 있었다.


-미안하지만 옆에 앉아도 될까요?

-예...


낯선 여자의 뜬금없는 말에 그는 순순하게 옆자리를 내어 주었다. 태곳적 시간을 스친 바람과 파도에 씻긴 현무암 조각들의 해변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았다. 그는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무릎에 두고 있었다.

이른 오전의 카페, 시를 읽는 남자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떡갈나무 단풍 빛깔의 넓고 긴 머플러를 두른 분위기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다시 말을 건넸다.


- 혼자 세요?

- 예...


시집을 차르르 넘기며 윤슬이 쏟아지는 바다를 보는 그의 대답에 훅 나를 당기는 힘이 있었다.


- 여행 중이세요?

- 아니요 그냥 나왔어요. 커피 한잔 하려고요...

- 재미있으시군요.

- 예. 혼자의 시간 괜찮지 않아요? 거기도 그러신 것 같은데...

- 예, 저도 가끔...


나는 가방에서 다치마나의 <영원회귀의 바다> 책을 꺼내며 물었다.


- 무슨 책 읽으세요?

- 바다와 잘 어울리네요 저는...(찰스 부코스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시집이에요

- 재밌는 시집이네요. 사랑이 왜 지옥에서 온 개일까요. 시를 좋아하나 봐요?

-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시를 탐닉하게 해요.


그렇게 만났다. 만화의 말풍선처럼... 그 후, 해마다 일월이면 늘 처음처럼 그 자리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오래도록 바다를 보다가 보말국수를 먹고, 하늘에서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간대의 비행기를 타고 서로의 길로 갔다. 마치 신년 시무식처럼 한해의 의식으로 그와 나는 그렇게 조우했다.


그 집 팽나무에 신화적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오래오래 이런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그에 대해 더 많은걸 빨리 알려고 하지 않았다. 천천히 길을 걷듯이 그를 걸어보고 싶었다. 아니 한 부분 감성의 결이 닿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서로의 세계가 다르고 또 다른 길을 걷기에 관심은 가지되 관여는 하지 않았다. 그가 누구와 통화를 하든, 그가 어떤 사람들과 SNS를 하든... 때로 말없는 말이 가장 함축적이라 생각했으며 나름 지성을 바탕으로 절제가 이루어질 때 관계의 지속성도 따라온다고 믿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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