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 수요일 아침 산책 9~11시
전 날에 초저녁부터 잠들어 한밤중에야 일어났다. 아이들이 내놓은 그릇을 치우고 손빨래를 했다. 컴퓨터를 열고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생각대로 술술 이어지지 않아서, 이미 쓴 글을 들고서 퇴고를 시작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보이고 걸리적이던 문장이 매끄럽게 제 자리를 찾는다.
관찰자에서 화자가 되어서 그의 마음을 되새겨본다. 가슴 저릿한 아픔을 느끼고 묵언의 통곡으로 지나가는 짙은 슬픔을 알아차린다. 시뻘건 심장이 녹아내리는 인고의 시간을 바라본다.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아침 일곱 시가 되어도 깨지 않고 잠들 수 있어서 감사하다. 첫째는 한 달 전에, 둘째 셋째도 이미 방학이라, 초등학생 막둥이 등교 시간만 챙기면 된다. 큰아이부터 셋은 더 자게 두고, 아침이 한갓지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누워서 쓰던 글을 보고 또 보고.... 어느덧 8시 20분이닷! 늦어도 40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곤히 자던 막둥이가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일어나고 이미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오월이는 막둥이 나가는 현관문 소리에 하얀 꼬리를 살랑살랑. 막둥이가 가고 나면 제 순서인 것을 알고 컹컹 짖는다. "오월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채비를 해야지." 플라스틱, 비닐, 종이를 각각 분리해서 장바구니와 종이백에 넣어 현관으로 던지고서야 강아지에게 다가간다. 우리에서 강아지를 꺼내어 오른발 왼발 들어 하네스 조끼를 입히고 집을 나섰다.
날 기다려준 강아지를 안고서 엘리베이터 내려오며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쉬어본다. 산책로에서 오월이가 머무는 곳에 멈추고, 걸어가면 따라 걷고, 빠른 걸음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쪽 다리를 들고서 초록 풀섶에 들어가거나 바윗덩어리나 기둥 아래에 멈추어 한껏 킁킁대며 냄새를 맡거나 핥거나.... 오월이의 시간이다.
내게도 가장 여유로운 때, 무념무상 강아지를 바라보며 그의 몸짓과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 느릿하게 지나간다.
고속도로 뒷길 산책로에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었다. 황톳길이 나오자 오월이는 다른 길로 방향을 틀려고 한다. 맨발걷기 황톳길은 우리가 동행할 수 없다. 가운데 지점에 1미터 사방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유공간을 확보하고 하네스 줄을 기둥에 고정시킨다.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가오다가 어느새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유히 지켜보고 있다.
며칠 연속해서 내린 비로 황톳길은 촉촉하고 푹신했다. 화닥거리는 발바닥 열기가 내리고 갱년기의 불도 내리는 듯하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깊이 쉬면서 초록 나뭇잎새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풀섶의 향긋한 내음을 맡는다.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며 천천히 걷는다. 한 걸음씩 나갈 때마다 몸이 흔들린다.
삶과 죽음은 들숨과 날숨과도 같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Life and death are like
inhalation and exhalation,
They always exist together
-Sadhguru-
지팡이를 짚고서 걷고 있는 구순이 넘은 아저씨, 오십 대 아들, 그리고 라디오를 켜고 빠르게 걷고 있는 아주머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산책로를 뛰어가는 청년, 느릿하게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칠십 대 형님들, 우리는 직사각형으로 길게 이어진 황톳길을 돌고 있다.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시원하고 보들보들하다. 나아갈 때마다 땅을 치면 온몸에 경쾌한 리듬이 느껴진다. 초록 잎새는 파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발바닥이 땅에 닳을 때마다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저만치 오월이가 분홍색 혀를 내밀고 나를 향해 웃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