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1층에 살 때였다. 베란다 창문으로 밑을 바라보면 아주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여름이 되면 무성하게 자란 이파리가 초록색 원형 침대처럼 보였고, 내가 뛰어내려도 푹신하게 나를 감싸줄 것만 같았다. 반대로 1층에서는 나무 밑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벤치가 있었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이면 그곳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앉아 있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기쁠 때도, 멍하니 앉아 있고 싶을 때도 그리고 가끔은 그곳이 약속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 나무는 내게 편안함을 주었고 나도 그곳에서 내 감정을 정리하곤 했다.
특히 고민이 있을 때는 종이에 고민을 적어서 베란다를 통해 나무 위로 던지곤 했는데, 구겨진 종이가 나무에 걸리면 나의 고민을 나누는 것 같았다.
중학교 때. 재미로 시작한 농구에 흥미가 생겨 농구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대회도 참가해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농구를 통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장난을 치다 발목이 부러졌고 성장판이 다쳐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가 계획하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원하지 않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운동을 하던 내 성적 그대로의 눈높이에 맞춰서. 석고붕대로 발목을 감싼 채 집에서 겨울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깁스에 응원의 메시지를 써줘도 나에겐 지저분한 낙서처럼 느껴졌다.
가끔씩 나무 위로 던지던 내 고민들이, ‘나’라는 덩어리가 되어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언제든지 던져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6시가 돼서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새벽 6시인지 저녁 6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개념이 없었고, 오늘이 몇 월인지, 며칠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어느덧 겨울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다가왔다. 평범하게 걷는 남들과는 달리 발목에 깁스를 하고 있던 나는 모든 게 어수선했다. 어머니가 나를 차에 태우고 학교에 등교시켜주시던 첫날, 난 적응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학교를 가지 않고 ‘프리스타일’이라는 농구 게임에 일주일째 빠져들고 있었을 때쯤, 어머니가 갑자기 점심시간에 나를 불렀다. ‘일터에 계실 어머니가 왜 이 시간에?’ 담임선생님과 무슨 말씀을 나누고 나를 설득하려나 보다, 라는 의심이 들었다.
집 앞으로 오셔서 다리가 불편한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셨다. 나는 내 옆에 있던 회색 목발을 꽉 잡고 창밖을 구경했다. 발목이 불편해서 당장 앞만 보고 걸었지, 이렇게 풍경을 본 건 얼마 만일까. 어머니는 조용한 시골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10분이면 갈 식당을 1시간을 우회하셨다. 그리고 도착한 옆 동네 오리고기 식당. 오리고기를 구우시면서 살코기는 다 내 쪽으로 밀어주셨는데,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든든하게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식당을 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학교를 다시 가라는 말을 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서 안도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내리려는 순간에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힘내라 아들’
어머니를 안아본 적이 언제였을까. 중학교 때 첫 농구 대회를 나갈 때, 너무 떨리고 긴장돼서 나를 배웅하러 나오신 어머니를 한 번 안으면서 잘하고 오겠다고 했던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 기억이 갑자기 스치면서 자동차 문을 닫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몇 초의 정적 후 문을 조용히 닫고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그 나무 밑에 다시 앉았다.
‘힘내라 아들’ 그 말은 단순히 힘을 내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믿는다는 말을 돌려 말씀하신 것 같았다. 내가 아무것도 시작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무엇도 도와주실 수 없는 어머니의 미안함이 느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상황이 절망스러워 나 혼자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모습을 반성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을 때, 나뭇가지 사이로 수많은 종이들이 보였다. 그 종이들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닌 구멍처럼 보였다. 나무는 그동안의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럴 때라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학교 가는 걸 시작하긴 무서웠지만 작은 것들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습관을 가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이불을 개고, 설거지도 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의 상황에서는 작은 발판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밖에도 나가 경비아저씨와 대화도 해보고, 조금 걷기도 해보고, 예전처럼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햇빛도 쬐었다.
조금씩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학교도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벤치 뒤에 있던 나무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무를 제거하겠습니다’ 그때는 왜 제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무뿌리가 아파트 담을 부순다거나, 태풍이 오면 나무가 쓰러질 위험 때문이었으리라.
어렸던 나는 일주일 동안 나무에다가 ‘제거하지 말아주세요’ 등의 반항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다시 가게 된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나무는 없어져 있었다.
내 힘들었던 고민들을 다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