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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란 Oct 20. 2023

인생은 대기실의 연속

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하고 본격적으로 영양사로서 경력을 쌓기 위해 다시 취업을 준비했다. 목표는 크게 가지라는 자기계발서의 한 문장을 실천해 큰 기업들을 목표로 삼았다. 이름만 말해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기업이었던 만큼 제출해야 할 자소서에 쓰여져 있는 질문 또한 난해하고 까다로웠다. 공채가 뜨고 난 뒤 며칠에 걸쳐서 자소서를 수정하고 저장하며 뜯어고쳤다. 회사마다 500자 이내 혹은 1000자 이내의 질문이 5문항 정도 있었는데 네이버의 글자 수 세기 기능을 사용해 요약에 요약에 요약을 하며 글자수를 채워나갔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몇몇 회사의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처음 면접을 본 곳은 CJ였다. 서울역에서 가까운 CJ 사옥에서 면접을 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대기업 사옥은 웅장했으며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였다. 나 같은 새내기 초보 영양사가 할 일은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압도당했다. 고개를 숙여 나의 OOTD를 보니 다림질은 했지만 어딘가 어설픈 보세정장과 물티슈로 대충 닦은 구두. 이 모든 게 나의 면접 경험치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의 워스트 드레서가 된 기분이었다.


많은 면접자들이 시간에 맞춰 1층에 모였다. 인솔자를 기다리며 경쟁자들은 서로의 전투력을 파악했다. 면접자들은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아마 졸업예정자거나 갓 졸업한 학부생들일 것이다. 난 또래들보다 2년 정도 학교를 늦게 들어갔는데, 졸업한 시기가 비슷하다면 다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인 게 확실했다. 인솔자가 내려오고 면접자들의 신원을 확인 후 방문증을 발급 받아 면접대기실로 올라갔다.


대기실에 모인 인원은 40명.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39명은 여성이었고 1명만 남자였는데 그 1명이 나였다. 인솔자는 대기실에 있던 우리들에게 4인 1조로 면접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나는 옆에 3명의 여성 면접자들과 함께 면접장에 들어갈 것이고 같은 공동 질문을 받더라도 누가 대답을 잘했고 못했고를 즉시 알게 될 것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식품영양학과에는 남자가 많아야 1명에서 2명이었다. 학부 시절 여자 동기들과 대화를 하면, 말빨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높은 데시벨과 빠른 속도의 말을 구사했고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인해전술로 압박해왔기에 나는 항상 별거 아닌 장난 같은 논쟁에서 패배했다. 그래서 ‘다른 면접자들보다 내가 한 살이라도 경험한 게 더 많으니 유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단숨에 불안으로 바뀌었다.


1조에 배정받아 첫 번째로 면접실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1분 동안 자기소개를 했다. 면접관들은 공동 질문을 제일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다음은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번갈아가며 던졌고,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나는 질문에 빗나간 답변들을 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주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게다가 그 종이에 쓰여 있는 문장 전체를 나에게 읽어 보라고 했다. 긴장한 나머지 혀는 꼬이고 말은 버벅거렸으며 초점 잃은 눈동자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 순간 탈락이라는 기운이 엄습했고 면접관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의 동물적이지도 않은 직감마저 맞는 것 같았다. 1조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끝나 집으로 가는 건 좋았다. 빨리 다음 회사 면접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집으로 오게 되었다.


다음은 삼성, 1차 면접이 있기 전에 하루는 일산 킨텍스에서 SSAT를 보았다. SSAT란 삼성의 인적성 검사를 의미하며 예전에는 SSAT였지만 현재는 GSAT로 바뀌었다. 추리, 논리, 시각적 사고 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시험장에는 수능을 보는 학생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분위기 또한 치열했다. 며칠 뒤 면접을 보기 위해 주변에 종합운동장이 있는 어느 역에서 가까운 삼성 사옥으로 갔다. 나를 포함해 남자 2명, 여자 1명 이렇게 총 3명이 1조로 면접을 봤었고, 외워갔던 답변들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질문들로 1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다음 면접은 한화였다. 면접을 보기 위해 다시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했다. 한화 사옥이 있는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고 내리니 오전 8시 20분. 면접시간인 9시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그 당시 양도 많고 값도 싸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핫한 빽다방이 근처에 있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 긴장이 좀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가오는 면접시간이 더 긴장감을 크게 만들었다. 예상질문들을 달달 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증권사가 굉장히 많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 사람들처럼 출퇴근을 하고 좋은 직장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이 시작되었고, 5명이 한 조로 1차 면접을 보았다.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 익숙해진 것일까.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는 내가 준비해간 예상답안을 응용해서 답변을 했고 처음으로 면접관들과 눈을 마주보면서 대화를 했다. 면접이 끝난 뒤에는 같이 있었던 면접자들과 후기를 얘기하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아직 합격 통보는 받지 않았지만 합격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결과 발표일. 1차 면접 합격발표를 받고 다시 최종면접을 향해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시작하지도 않은 면접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부담감과 긴장감은 주고 결과를 받고 싶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지하철,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않겠지만 내 시선에서는 비슷한 또래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면접장으로 가는 경쟁자처럼 보였다. 왼쪽 발에는 합격, 오른쪽 발에는 탈락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발걸음을 옮겨 한화 사옥에 발을 디딘 순간에 발은 일부러 왼쪽을 만들었다. 의심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최종면접은 3명이 한 조로 들어갔었다. 한 줄로 서서 앞에 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최종면접이라는 게 뭘까. 단순히 우리에겐 마지막 관문일 수도 있겠지만, 면접관들 입장에서는 검증을 한번 거친 사람들을 한 번 더 검증해야 하는 자리일 수도 있겠다. 나는 뚫어야 하고, 면접관들은 더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분명 나는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을의 입장이다. 면접장이 아닌 검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검증대라는 생각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직급이 높은 분들이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다는 느낌은 공기의 흐름과 피부로 느꼈다. 그 압박감은 처음으로 내가 최종면접에 와봤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긴장을 풀어주며 부드럽게 농담도 하면서 질문을 던지다가도 갑자기 들어오는 압박 면접은 내 입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유도하기 충분했다. 질문을 받았을 때 3초 이상의 생각할 시간은 나의 면접 점수를 깎는 듯 느껴졌고 어떠한 대답이라도 반사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 대답이 면접관들의 질문에 맞아야 했었다. 예상답안은 그에 맞는 질문이 정확하게 나왔을 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질문은 없었다. 많은 답안들을 준비해 머릿속에 넣고 있다가 적당한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을 말해야 하는 순발력 싸움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까지 없는 말을 지어내 가득 채우고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해보지 않은 깍듯한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순간, 가운데 있던 한 분이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왜 나를 보고 미소를 보이셨을까? 그것은 최종면접이라는 무미건조한 곳에서 습기가 없는 마른 감정을 가진 경쟁자들 사이에, 그 경쟁자들 중에서도 나에게 준 물 한 잔이었다. 고생했다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난 사막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자원을 찾은 것처럼 결과발표날에 합격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심지어 기뻤다. 가벼운 물을 무거운 기름으로 착각한 것이다. 최종면접이 그렇다. 면접관의 표정,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자신의 운명을 바꿀 것 같은 느낌. 그만큼 절실한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기대한 만큼 탈락이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 꽤 많은 시간 감정을 추스르는데 쓰게 되었다.


10월 어느 날 가을, 그해의 마지막 면접은 신세계였다. 1차 면접 장소는 대구였으며, 코스트코가 있는 주변에 5층 정도의 건물에서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나면 고생한 나를 위해 코스트코 내에 있는 거대 피자를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신세계면접은 다른 기업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8명 정도 남자 영양사들이 있었다는 점.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기업들보다 신세계는 조금 더 일찍 남자 영양사를 채용했던 것 같다. 3명이 한 조로 면접에 들어갔고, 남자영양사들 모두 이러한 상황이 반가웠는지 면접이 끝나고 모두 기다려 커피를 마시면서 취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중에는 이미 다른 곳에 합격했지만 신세계에 합격하면 여기로 온다는 사람도 있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같이 동대구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나중에 합격하면 연락하기로 하면서 각자의 갈 길로 헤어졌다.


1차 면접은 합격이었다. 면접 분위기도 좋았고 답변도 꽤 무리 없이 했었다. 최종면접 장소를 통보받고 성수동에 있는 신세계푸드로 향하던 날, 면접내용이 어떻게 되든 기대하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않기로 다짐했다. 물론 합격하면 좋지만. 면접장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듯한,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뒤에 식당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면접을 본 상태였고 나는 오후 조에 배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1차 면접 때 대구에서 봤던 남자영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전에 먼저 면접을 본 것일까? 같은 조였던 한 명은 대답을 워낙 잘해서 합격할 줄 알았는데.’


취준생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면접장에 들어갔다. 최종면접을 한번 경험했어도 그것으로는 이겨내기 부족한 압박감이 다시 몰려왔다. 동시에 합격할 수 있다는, 복권을 확인하기 전 같은 기대감도 함께 있었다. 한 번만 통과하면 되니까. 이제는 긴장하더라도 자기소개를 할 때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 최종면접 때와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는데 그제서야 알았다. 1차 면접은 실무적인 부분을 테스트하는 실무면접이라 현장에 있는 실무진들이 면접을 진행한 것이었고, 2차 면접은 임원진들이 보는 인성면접이었다는 사실을.


비슷한 내용의 질문들을 예전과 비슷하게 대답을 하고 나서 인성면접에 대한 준비를 더 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채 면접이 끝나버렸다. 같은 조였던 취준생 한 명과 같이 서울역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그 사람은 수많은 기업에 3년째 면접을 보고 있는데 항상 떨어진다고 했다. 그것도 최종면접까지 오면 합격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오히려 본인을 정말 힘들게 만든다고 하면서 이번 면접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탈락하면 이젠 다른 길을 찾는다고. 성수동과 서울역 사이 어딘가에서 이제 내릴 차례라며 가방을 챙기고 악수를 건넸다. 합격해서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합격자 발표까지는 약 2주의 시간이 걸린다. 무엇을 시작하기도 애매한,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불안한 시간 속에서 혹시 언제 필요할지도 모르고 접근하기도 쉬운 영어학원을 다니기로 선택했다. 세 달을 등록할 수 있었는데 한 달을 등록한 걸 보니 2주의 공백에 대한 도피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영어학원을 다니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오후 6시 40분쯤 문자 한 통이 왔다. 면접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학원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는데, 확인을 하면 기분이 좋든 좋지 않든 집중을 하지 못할까 봐 수업이 끝나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확인을 하지 않아도 집중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면접 봤던 날을 상기하게 되었다. ‘잘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합격일까? 불합격이면 내년에 또 다시 준비해야 할 텐데.’ 많은 감정들에 못 이겨 결국 수업 도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두운 학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핸드폰 빛에 의존한 채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들어가서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결과를 확인했다.

탈락이었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어쩌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될 줄 알았는데. 최종면접이 끝나고 취준생 한 명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종면접까지 오면 합격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오히려 힘들게 만든다고.’


핸드폰의 전원을 눌러 꺼버렸다. ‘다시 최종면접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함께 나의 하반기 취업 도전은 끝이 났고 그해도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길었던 겨울 동안,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나에게 2주 동안만 하려고 했던 오전 운동, 오후 학원의 루틴은 계속 이어졌다. 남는 시간에는 여행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면서 취업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몇 개월 뒤 돌아온 상반기 취업시즌.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로운 전투복을 샀다는 점. 예식장에 입고 가도 될 만한 그럴싸한 정장에 셔츠에 구두까지. 게임에서 레벨이 오르면 갑옷을 바꾸듯, 이제 예전 면접 복장이 초보 취준생 같아 보였다. 취준생에도 등급이 있나 보다. 여러 군데 지원서류를 넣어 많은 기회를 얻는 것도 좋지만 이번엔 가고 싶은 기업을 정리해봤다. 그리고 순위에 따라 힘을 줄 곳은 주고 뺄 곳은 빼면서 우선순위를 정해보았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기업은 신세계였다. 이유는 단순히 내가 신 씨라서 신세계가 좋았다. 채용날짜에 맞춰 서류를 준비하고 다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서류심사는 무난하게 통과하는 걸로 봐서는 서류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1차 면접은 대전에 있는 상공회의소. 나는 이곳에 컴퓨터 자격증을 몇 번 치르러 와봤다. 그리고 번화가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자주 지나갔었는데 익숙한 곳이지만 이날은 꽤 어색했다. 내가 돌아다니던 곳에 지사가 있었다니.


이번엔 예상질문을 준비해가지 않았다. 작년에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들이 하는 공통된 질문들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 있었기도 하고, 자꾸 준비해 간 예상답안들만 떠올라 유연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 같았다.


1차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 작년 대구에서 뵌 면접관이 앉아 계셨다. 몇 차례 최종면접까지 갔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1차 면접은 크게 긴장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했다. 그날은 처음으로 면접비를 3만 원 받았다. 사실 같은 지역이라 집에서 면접장까지 멀지 않아 버스비로 1100원이 들었다. 3만 원으로 닳아버린 슬리퍼를 사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1차 면접 합격발표를 받고 다시 최종면접이 남았다. 이번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면접관들은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면접관이라면 그것들을 보고 어떤 질문을 할까? 라는 생각으로 면접 준비를 했다.


최종 면접날,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다시 성수동에 왔다. 조금 일찍 도착해 앞에 있는 작은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노에 떠 있는 얼음과 컵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는 내 머릿속을 비워주었다. 출발할 시간이 되었을 때 사옥을 한 번 바라보았다. “내가 저곳에 다닐 수 있을까?”


작년과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었다. 다섯 명의 면접관도 몇몇 익숙한 얼굴이 있었고, 질문 또한 비슷한 패턴에다가 내가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위주로 질문이 들어왔다. 그저 무엇을 과대 포장하지도 않고 거짓말하지도 않았으며 감점이 되더라도 사실 그대로 얘기했다. 면접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잘못한 게 아니니까 후회하지도 않았다.


발표 날짜도 잊을 만큼 2주가 빠르게 지나갔다. 평소처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나와 보니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있었다. 하나는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고, 하나는 내 친구였다. 모르는 번호는 스팸 전화라 생각하고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너 면접 봤었어?”

“어, 왜?”

“너 합격 했다던데? 왜 전화가 나한테 오냐?”


생각해보니 지원서를 작성할 때 비상연락처에 친구 번호를 적어놨었다. 전화를 끊고 02번호로 전화를 하니 합격했다는 소식을 직접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20대의 가장 치열했던 취준생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합격은 또 다른 관문으로 가기 위한 대기실이란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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