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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란 Oct 20. 2023

컵 하나 만졌을 뿐인데 퇴사했다

2015년 2월. 나는 동생들에게 '학교 다닐 때가 좋은 거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에 미련이 없던 나는 졸업 전에 있던 국가고시만 해결하고 졸업식도 가지 않은 채 도망치듯 졸업여행을 떠났다. 난 남들보다 대학교에 늦게 입학했는데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교에 들어왔고 졸업 후에 하루빨리 현장으로 나가고 싶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졸업식 날짜가 지나고 여행도 마쳤을 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눈을 떴을 때 창문 밖으로 가벼운 싸리눈이 내리면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런데 뭘까? 수업이 끝난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듯한 이 공허한 기분은…'

정신 차려 보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취업에 대해 큰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졸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취업이 되는 줄 알았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취업은 누가 시켜주나? 그렇게 난 백수가 되었다.


백수의 세상으로 들어오니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들은 눈만 마주쳐도 저 사람이 백수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이 시기를 보낸 친구는, 저 사람이 몇 년 차 백수인지까지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엔 같이 놀 친구들이 많아서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했고, 다행히 하나둘 취업을 하면서 나도 시간이 흘러 요식업 회사 인턴이라는 직위를 얻게 되었다.


면접 때 보았던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나의 동기였고, 간단한 교육을 들은 뒤 각자의 업장으로 배정받아 흩어졌다. 나는 카이스트의 한 식당으로 배정받았는데 나름 깔끔하게 정장을 입은 내게 토마토소스가 묻은 조리복이 지급됐고 그렇게 바로 주방으로 투입되었다. 관리자가 되기 전에 현장을 먼저 알아야 된다는 명목으로.      

1분의 적응 기간도 없었다. 어렸을 적 따놓은 조리자격증과 주방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다행히 칼질을 시작할 수 있었다. 파스타와 필라프 그리고 돈까스를 만드는 식당이었고, 하루에 600인분 정도의 음식이 팔렸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주문표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끊임없이 나왔고 순간 이 시간이 제일 바쁜 시간이라는 걸 직감했다. 할 줄 아는 건 없었지만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대부분 설거지나 나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쯤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그제서야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 시선은 밥을 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선배들에게 쓰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없던 오전 일과를 보내고 조금 쉬겠구나 생각했지만, 저 멀리서 귀를 의심하는 말이 들려왔다. "야채 썰자!"


브레이크 타임은 직원들이 쉬는 시간인 줄만 알았는데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숙여진 내 고개의 눈에 들어온 건 하얀 도마, 오른손엔 칼, 왼손엔 파프리카를 쥐고 있는 현실을 보니 '백수 시절에 조금 더 재밌게 놀 걸...' 하는 후회만 생기게 되었다.


저녁 장사도 끝내고 주방청소와 튀김통에 기름을 교체하니까 하루가 끝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주방일을 했고 인턴이기 때문에 월급은 몇 달 동안 90만 원이라 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으로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오늘은 잘 끝냈지만 내일이, 그리고 앞으로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나에게 물었다.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나는 답하지 못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대학교 동생들이 일하는 곳에 찾아왔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꽤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약간의 겉멋을 가미해 팬을 돌리고, 파스타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두 달간의 건방진 내공을 보여주었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커피를 마시면서 동생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난 조금은 일에 익숙해진 내 모습에 대한 좋은 평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생들은 의외의 말을 했다.

"형,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응?"

"예전에 형이 말해줬던 목표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요."


당황했지만, 잠시 머무는 거라고 대충 둘러대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동생들을 보낼 시간이 왔다. 두 명의 동생과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동생이 눈물을 보였다. 나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실망이었을까.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건물로 들어와서, 아무도 없는 구석진 곳 소파에 앉아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예전에 형이 말해줬던 목표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요…"


내가 원했던 모습이 이 과정을 버티고 관리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취업은 해야 하니까 단순히 직장을 얻은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조언을 구하고 싶어 교수님을 뵈러 학교에 갔다. 그제서야 졸업식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하지만 교수님은 그날 학교에 계시지 않았고, 나는 아무런 조언을 구하지 못한 채 교수님 방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배가 고파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라 간만에 학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2800원의 식권으로 냉동 탕수육이 메인인 학식을 받아 간만에 학식을 먹고, 교수님을 뵙지 못한 아쉬움에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식구에다 공손히 식판을 넣어놓고 옆에 있던 정수기에서 컵을 손에 쥐는 순간.


내가 학교를 다닐 때 토막토막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생각났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이 정수기에서 컵을 집었던 기억, 

공강이 있을 때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여기서 물을 먹었던 기억, 

졸업을 앞두고 몇 년 동안 공부했던 도서관에서 나올 때, 꼭 좋은 곳 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물 한 잔 먹고 간 기억.


다시 한번 잘하고 싶어졌다.

학교를 다닐 때 무언가를 목표로 열심히 했었던 그때처럼,

늦은 시간이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피곤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돈이 없어도 마음은 여유 있었던 그때처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때 생각했던 진로의 방향과 취업 시기에 맞춰 취업을 한 지금의 방향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컵 하나 만졌을 뿐인데, 그랬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의 손바닥을 뒤집어 보곤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주먹을 쥐면서 어쩌면 급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어줍잖은 핑계를 대고 퇴사라는 이력을 남겼다.


백수를 겪어본 나로서는 내일 할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버티고 일하는 것도,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는 것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드는 과정 속에 ‘퇴사’라는 선택도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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