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난 뚱뚱하고 뽀얀 피부를 가진 어린이였다. 동급생 사이에서 내가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내가 찐 살들이 다른 뚱뚱한 친구보다 좋은 음식으로 만들어진, 그러니까 인공 마가린이 아닌 순수 우유로만 만들어진 버터나 소고기의 지방일 것이라는 루머도 생겼다. 어머니가 해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는 건 백번 인정하지만 사실 살이 찐 이유는 따로 있었다.
‘포켓몬스터’라는 만화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다른 초등학생들과 다름없이 ‘포켓몬스터’가 최고의 관심사였다. 전국 초등학생들의 욕구는 방영 시간대마다 꼬박 TV 앞에 앉아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냈는데 대표적으로는 피카츄 배구게임, 피규어, 짱딱지 그리고 간단한 설명 및 타입이 적혀 있는 카드. 그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상품은 ‘띠부띠부씰’이라는 스티커가 동봉되어 있는 ‘포켓몬빵’이었다.
만화 주인공인 지우가 포켓몬스터들의 정보를 모아 도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친구들 사이에선 띠부띠부씰을 책자에 붙여 하나의 도감을 완성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스티커를 나만의 시크릿 포켓몬 도감에 붙이는 순간만큼은 심장에 스티커를 붙이는 듯한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 쾌감을 포기할 수 없어 하루에 한 개씩 꼭 빵을 먹었다. 당시 포켓몬빵은 500원이었는데, 구매하는 순간 동전에 그려진 두루미도 포켓몬으로 보이곤 했다.
내가 살이 찐 진정한 이유는 질 좋은 음식이 아닌 밀가루와 마요네즈, 설탕과 마가린이 섞인 ‘포켓몬빵’ 때문이었다. 스티커를 가지고는 싶지만 살이 찌니까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챙기는 아이들이 속출했고, 랜덤으로 동봉되어 있는 스티커를 확인하고 사기 위해 진열되어 있는 빵을 짓이겨 놓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객기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빵을 다 먹어버린 탓에 뚱뚱한 체형으로 변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 키도 자라고 운동을 병행해서 자연스레 살이 빠지긴 했지만, 어렸을 적 내 사진을 보면 한 명의 통통한 포켓몬 트레이너가 있는 것 같다.
2022년, 어느덧 내 나이는 30대.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해 사막같이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 나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오아시스 같은 기사를 보게 되었다.
‘포켓몬빵 재출시, 그때 그 추억 소환’
나의 목은 이미 거북이처럼 앞으로 나와 컴퓨터 앞으로 끌려 들어갔고, 화면엔 어렸을 적 보았던 포켓몬빵들의 이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초코롤, 초코케익, 카스타드빵 등 먹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맛의 눈부신 라인업.
“미미!(아름다울 美, 맛味)”
마우스 옆에 있던 커피 한 모금을 쭉 빨아 먹으면서 목에 걸려 있던 사원증을 잠시 벗었다. 빵을 먹고 싶어도 단종 되어서 더 이상 먹지 못했던 지난 시절, 우표 모으기보다 재밌었던 띠부띠부씰 모으기. 추억을 생각할수록 흥분이 점점 고조되어갔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의자를 들썩이며 출시일을 확인했다. 오는 23일.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용돈을 받아쓰느라 하루에 한 개밖에 먹지 못하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고, 식이조절을 할 수 있어 뚱뚱해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기사 링크를 친구들에게 전송한 뒤 함께할 포켓몬 사냥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총 세 명이 모였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는 친구, 금전적 여유가 있는 친구 등 환경과 출발점은 같은 듯 다르지만 포켓몬 사냥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우리는 단체톡을 통해 좌표를 공유하기로 했다.
드디어 출시일. 출근 시간보다 이른 아침에 공복 유산소 운동 겸 가볍게 편의점을 돌아보았다. 회사 주변에 꽤 많은 편의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 개 정도 사는 건 무리 없겠지.’ 했는데 열 군데를 들렀을 쯤부터 쉽게 구할 수 없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편의점 앞에는 나를 가로막는 이상한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오박사 그림과 함께 ‘포켓몬빵을 찾아 여기까지 왔구나! 자, 그럼 다음 편의점으로 이동하렴’. 만화에 나오는 오박사는 교수님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어렸을 때처럼 나는 순순히 다음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로켓단 그림이 붙어 있었다 ‘포켓몬빵을 사러 왔다면, 되돌려 보내는 게 인지상정’
“…”
얄미우면서 반가운 문구들을 보며 다음 편의점으로 이동하는데 친구 한 명에게 메시지가 왔다. ‘**동 C*편의점, 매일 오후 8시 30분 포켓몬빵 입고, 물류차 출몰 확인’ 바로 그곳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모자를 푹 눌러쓴 검은 형상들. 이미 많은 사람이 줄 서 있었다. 대다수가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의자를 가져와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재작년 여름쯤이었나, 스타벅스 레디백을 쟁취하기 위해 새벽부터 매장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품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건 시간을 보면서 트레드밀을 타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줄에 합류하고 싶진 않았다.
발품을 팔아 빵을 사는 건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며칠 동안 일부러 편의점으로 돌아다니며 내심 빵이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예상대로 없었다.
어느 날, 단톡방에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것은 ‘포켓몬빵 8개’ 였다. 우리 포켓몬 사냥꾼들은 빵을 구하지 못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 한 장이, 힘들 때 듣는 명언 한마디처럼 우리를 더욱 강한 포켓몬 사냥꾼으로 만들어주었다. 다시 희망에 불타올랐다. 사진을 올린 친구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구매처는 바로 쇼핑몰. 여러 쇼핑몰이 있는데 매일 오전 11시에 파는 곳,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게릴라로 파는 곳, 홈쇼핑처럼 방송을 하는 곳 등 여러 앱과 사이트를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55분, 쇼핑몰 앱을 깔고 회원가입 및 배송지 설정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초시계가 오전 11시를 알리는 순간 새로고침을 눌렀다. 서버는 나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경쟁자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듯이 멈춰 있었고, 나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엄지와 검지를 새부리처럼 뾰족하게 모아 화면이 나오면 터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입문한 자는 순서를 기다리라는 듯 ‘품절 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다음은 홈쇼핑. 이곳은 홈쇼핑 중에 빵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예를 들면 홈쇼핑은 8시에 시작하지만 쇼호스트가 방송 진행 중 8시 10분에 한 차례, 8시 15분에 한 차례 등 몇 번을 나누어서 파는 방식이었다. 방송에 입장하자마자 오른쪽 상단에 있는 인구모양의 수는 4만명을 돌파했고 실시간 댓글창에는 포켓몬빵을 갈구하는 언어들과 초등학생, 아기엄마 등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들이 많이 보였다. 쇼호스트가 8개씩 1세트로 구성된 포켓몬빵을 400세트 뿌렸다. 구매를 누르는 순간 품절, 또 구매를 누르는 순간 품절. ‘누군가 사기는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마다 보이지 않는 사냥꾼들과 경쟁을 하며 지내는 것도 일과가 되었다. 잠잠하던 단체톡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친구 한 명이 포켓몬 사냥꾼을 은퇴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유는 8개의 빵에 들어 있던 띠부띠부씰이 모두 또가스와 냐옹이였던 것. 그래서 그 친구는 ‘로켓단’이라는 별명과 함께 단체톡에서 나가게 되었다.
이제 남은 사냥꾼은 다른 한 명의 친구와 나. 한 달쯤 지났을 때, 포켓몬빵의 인기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우리는 고단한 노력 끝에 인터넷 구매를 통해 한 번씩은 빵을 먹어본 상태가 되었다. 예전처럼 빵에 대해 엄청난 욕구가 있거나 스티커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사이트에서 결제방법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여유롭게 빵을 구하고 있던 평화로운 어느 날, 친구가 충격을 받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인도 은퇴해야 되겠다고.
이유는 8개의 빵을 무작위로 배송해주는 랜덤 배송이었는데, 8개의 빵 모두 디그다빵이 온 것이었다. 택배를 여는 순간 민머리의 두더지들이 8마리가 보여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빵을 먹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 같다고 하면서 그 친구도 다시 동심에서 사회인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이 모두 떠났을 때, 나도 빵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게 되었다. 포켓몬스터 만화에서 1기 시즌이 끝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우리만의 ‘2022년 포켓몬빵 시즌’을 종료하게 되었다.
며칠 뒤, 밀린 빨래와 대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초록색 A4파일집을 발견했다. 내가 어렸을 적 모은 띠부띠부씰 스티커파일. 눈에 보인 김에 최근 동안 빵을 먹으면서 모은 스티커를 같이 붙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목 의자에 앉아 먼지가 쌓인 파일을 열어보니 진화순서에 맞게 오와 열을 맞춘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페이지들을 한 번씩 손으로 훑어보았다.
어렸을 적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학원을 다닐 때 게임을 했고, EBS 대신 만화를 봤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되면 그저 일찍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건 하루 만에 포기하는 일이 많았고, 지루한 것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스티커를 모았던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내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하고 싶은 것만큼은 남들보다 부지런히 할 자신이 있다는 것. 학생 때는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서 성적으로 등급을 나눠버리니 나는 항상 뒤처지는 아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결국 고민의 끝은 좌절이었다. ‘왜 나는 공부를 못 할까, 왜 노력해도 안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30대가 되고 나니 아주 당연한 답을 찾았다.
‘나는 남들보다 모자란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반대로 당시에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는데 알지 못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 마음은 점점 편해졌다.최근 모은 띠부띠부씰을 예전 스티커 옆에 나란히 붙였다.
변하지 않은 나에게 오히려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