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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란 Oct 20. 2023

어쩌다 너 같은 애가

옆자리 J는 나에게 물었다.

ㅡ 수능도 끝났는데 뭐할 거야?

ㅡ 어? 글쎄….


수능을 보지 않았던 나는 수능이 끝난 기분이라거나 끝이 났다는 시간개념 같은 것을 아예 몰랐다. 그냥 나오는 대로 덧붙였다. 할 것도 없는데 아르바이트나 하지 뭐.


평소에는 스쳐만 다니던 아파트 단지 앞 신문함으로 향했다. 쇠가 벗겨지고 녹슬어서 갈색으로 변한 신문함에서 교차로를 꺼내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을 땐 동네 식당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입구 앞에 ‘직원구함’이라는 공지가 붙은 곳으로 들어가 아르바이트 구인을 물어보았다. 고3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대부분 단순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었다. 홀서빙, 패스트푸드점, 택배 상하차, 시급은 꽤 짭짤했지만 위험했던 치킨집 배달알바 등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첫 번째, 먹을 것이 풍부해 혹여나 봉급을 받지 못한다 해도 본전은 뽑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 

두 번째, 거칠고 까만 사내들만 있는 곳이 아닌, 혹여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낼 수 있는 이성이 있는 곳. 

세 번째,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혼자 순위를 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또래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으니까.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100m를 질주하는 달리기 선수처럼 모두 ‘수능 끝!’이라는 출발신호와 함께 달려나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무리가 메뚜기떼처럼 휩쓸고 갔는지, 쓸데없는 전단지만 나뒹구는 먹자골목에서 아무 소득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후미진 골목을 지나 유동인구가 적은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한 가게 앞 A4용지에 ‘직원구함’이라는 문구가 깜깜한 바다에 환한 등대처럼 보였다. 얼른 불나방들이 몰려오기 전에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곳은 술집이었다. ‘음, 어쩌지.’


아직 미성년자였던 나는 내 또래 경쟁자들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의 조건 3순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문을 열었다. 잔뜩 긴장해 승모근을 턱 밑까지 치켜든 채 말했다.

ㅡ 계세요? 사장님?

아직 오픈 전인 것 같아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왠지 이곳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ㅡ 누구세요?

어두운 곳에서 커튼을 걷으며 누군가 나왔다.


ㅡ 저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써 있어서 들어왔는데 혹시 고3은 안 되죠? 곧 졸업하긴 하는데……

ㅡ 잠깐 앉아 봐요.


그는 적당히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과 체격은 왜소하지만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거구들처럼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30대 초반이라고 밝힌 그는 밤에만 일해서 그런지 피부는 하얀색이었다. 마주 보고 앉아 반말과 존댓말을 적절히 섞으면서 본인도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ㅡ 고3? 괜찮아. 다음 주부터 5시에 나와 봐요. 그리고 새벽 1시에 끝나. 시급은 5천 원이고. 

    

잘은 모르지만 미성년자인 내가 술집에서 일하면 왠지 경찰들이 지나가다 불심검문을 할 것 같았다. 법적인 문제라도 발생할까 걱정하던 나의 불안감을 해결해준 사장님이 쿨하고 듬직해 보였다. 그렇게 나의 가장 ‘끝 순위’였던 3순위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최 사장. 그날부터 난 그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청소, 주문받기, 카운터, 재고정리 등이었다. 그리고 술집의 기본 소양과 같은 생맥주를 잔에 따르는 일을 배웠다. 내가 일을 시작하자마자 최 사장을 신뢰하게 된 것은 생맥주를 따르면서였다. 그는 맥주를 따르다가 생긴 거품을 국자로 걷어내고 남은 공간에 다시 맥주를 따랐다. 대부분의 술집이 거품을 걷어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으로 보니 꽤나 정직한 사내 같았다. 고등학생인 나를 술집에서 일하게 해준 것은 제외하고는 말이다.


손님이 붐빌 때는 쥐포를 굽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주방일의 마지노선이었다. 더 이상 도와주고 싶어도 할 줄 몰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가스레인지 불에 마른오징어를 구워주시던 어머니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그럴싸하게 구웠다. 가장자리에 탄 부분은 가위로 종이를 오리듯 잘라냈다. 쥐포 두 장에 삼천 원. 한 장에 천 원씩, 나머지 천 원은 나의 시급이라 생각하고 정성스레 곱게 구웠다.


주방에서의 역할은 쥐포 굽기와 설거지가 전부였지만 옆에서 계속 안주를 조리하고 있는 최 사장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과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그러니까 매일 오후 5시 전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말했다. 최 사장은 주로 ‘그랬어?’, ‘그래서?’ 하면서 나의 눈높이를 맞춰 주는 반응을 보였고 30대 초반이었지만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어느 날, 최 사장은 나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는 주저 없이 ‘형’이라고 불렀다. 

ㅡ 형 당구 치고 온다.


그리고 가끔은 나를 데리고 단골 술집으로 가서 맛있는 것들을 사주곤 했다. 점점 최 사장과의 관계는 가까워져서 그의 일상에 ‘나’라는 사람이 녹아들고 있었다.   

 ㅡ 형, 퇴근하기 전에 라면 좀 끓여 주시면 안 돼요?


가끔 나는 최 사장에게 스스럼없이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도 요리하는 걸 좋아했는지 아니면 동생인 내가 늦게까지 일하는 게 측은했는지 배고프냐고 물어보고 나서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난 최 사장이 끓여준 대파와 콩나물이 들어간 라면을 좋아했는데 두 봉지는 거뜬히 먹었다.


나는 그곳에서 커다란 사건도, 큰 변화도 없이 잔잔한 물결처럼 몇 달을 쉬어갔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난 뒤 대학교를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대학교에 들어가기까지 긴 시간을 채웠다. 

ㅡ 형, 자주 놀러 올게요.

ㅡ 어쩌다 너 같은 애가 들어와서… 또 보자.

내가 들은 마지막 인사였다.


신입생이 된 이후, 내가 중심이 아닌 틀에 짜여진 대학교에 들어가 무언가에 계속 끌려다니는 듯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별다른 추억을 쌓고 싶지 않아 익숙한 것을 찾아 다녔다. 어차피 군대에 가버리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편하게 놀면서 다시 아르바이트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찾던 도중 오랜만에 최 사장의 술집을 지나갔다. 평일인데 닫혀 있는 가게. ‘오늘은 장사를 안 하나?’ 거울처럼 비치는 통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술을 먹고 치우지 않았는지 빈 맥주병이 테이블에 잔뜩 깔려 있었다. ‘최 사장 친구들이 놀러왔다 간 걸까?’ 그때 기가 막힌 타이밍처럼 최사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다시 일해달라고 하는 건가?’ 내심 기대를 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최 사장이 죽었어요. OO장례식장 -친구 OOO-’


30대인 최사장의 친구가 이런 장난을 치진 않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나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신분보다 좀 더 가까운 사람으로 날 소개했다. 

ㅡ 아는 동생인데요. 조문왔어요.


장례식장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주위를 의식한 채 어설프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여전히 적당히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 두꺼운 입술, 하얀 피부, 30대 초반처럼 보이는 얼굴의 최사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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