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수염이 갸날펐던 학창시절의 나는 공부가 싫어서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흥미가 생겼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공부만 아니면 뭐든지 재미가 있었다.
남들은 학원 다닐 시간에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오락실도 자주 들락날락했다. 시험기간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찍 끝난다고 좋아했고,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공을 던지고 왔다. 남들은 다음 교시를 준비할 짧은 10분 동안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공부가 귀찮고 재미없었던 것이었을까? 나는 항상 선생님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으며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과자를 몰래 입에 넣어 녹여 먹거나, 왼쪽 손에 mp3 이어폰을 쥐고 노래를 듣곤 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마치 약속했다는 듯이 친구들과 운동장에 모여 운동을 했다.
공부에 흥미 없던 나는 성적표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성적표를 식탁에 두면서도 그것을 보았을 어머니의 감정을 생각할 만큼 속 깊은 아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철없는 내가 중학교를 다닐 동안, 나에게 단 한 번도 공부를 하라고 한 적이 없으셨다. 그저 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인자한 어머니였다.
어느 날은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호기심에 함께 마셔버렸다. 친구와 나는 어머니의 훈계가 무서워서 하루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어 연락할 방법도 없었던 어머니의 걱정을 외면한 채, 나와 친구는 밖을 돌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화가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는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고, 문을 여는 순간 청소기를 돌리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나 왔어…”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에게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지만, 나는 눈빛에서 ‘안도’를 읽었다. 단어가 떠오르기 전에 몸으로 먼저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장난스레 “누구세요?”라고 대답을 하시면서 청소를 계속하셨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철없는 행동들은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시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루는 어머니께서 안 드시던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다. 그렇게 인자하시던 어머니가, 그렇게 묵묵하시던 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이해하시던 어머니가, 침묵을 깨고 나를 보며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모습마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왜 술을 먹고 들어와서..!”라고 오히려 화를 냈고, 어머니는 계속 우셨다.
그때 깨달았다. 어머니는 이제까지 나를 이해한 게 아니라, 싫은 행동마저도 소중한 아들이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울음을 그친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꽃잎이 떨어진 꽃과도 같았다. 자신의 전부를 걸어 울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나의 방황과 더불어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이 함께 사라진 것 같아 죄송하고 가슴 아팠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나를 보며 오열하시던 그 이후, 누구를 가리키는지 몰랐던 나의 철없던 가시들이 사라져갔다.
장맛비같이 갑작스레 왔던 사춘기가 지나고 느지막이 공부를 시작해 항상 뒤에서 1, 2등을 다투던 석차도 앞 순위로 바뀌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꽃대를 잘라 주어야 더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수국처럼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아직도 어머니는 내게 무엇을 강요하거나 바라지 않으신다. 늦게 출발한 만큼 30대가 된 현재까지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응원해주시는 한결같은 어머니. 기억이라는 꽃잎이 있다면 아팠던 기억은 다 떼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가 기뻐하셨던 나의 모습만 기억하실 수 있게 좋아하시는 꽃잎만 하나하나 모아서 선물처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