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부모님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사회로 나왔다.
나는 남들보다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편이었다. 대학과 달리 사회로 나와 보니 같은 업종이라도 너무나 많은 프로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S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좋은 학벌에 영어까지 능통하고 업무처리능력도 뛰어났다. 사회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전혀 문제없을 만큼 업무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보여줬다.
2년 후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엑셀 스킬도 늘리고 영어도 열심히 해서 똑같이 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S와 같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부족한 점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도, 현장에서도, 심지어 퇴근을 해서도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떠올리며 비교했다.
그런 자격지심 때문에 일을 하는 기간 내내 ‘나는 이제까지 뭘 했지’라는 자책과 함께 지난 세월들을 전부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남들이 학업에 매진할 때 나는 운동을 했고, 남들이 어학연수를 다닐 때 나는 목표 없이 서울로 올라가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남들이 자격증을 따러 다닐 때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이런 생각들이 나의 자존감을 더욱 낮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질투와 욕심이 가득 차 올랐다.
어느 날, S의 옆자리에 앉아 일을 할 때였다. 서로에 대해 크게 궁금한 건 없었지만 어색한 게 싫어서 형식적인 얘기가 오가던 중 S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운동을 좀 배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
나는 자신감 없는 말투로 ‘우선 이것부터 하고 그다음은 이거 하면 어떨까요?’ 하며 조심스레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시콜콜한 잡담들이었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각자의 시간을 보낸 2년 뒤.
결국 난 목표하던 사람이 되지 못했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S도 단기간에 만들어진 실력은 아닐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불현듯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운동을 어떻게 하면 돼?’
이 말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희한하게도 그 말을 곱씹을수록 자격지심이 사라졌다. S도 완벽한 것 같았지만 못하는 게 있었던 거다. 그건 단지 S가 잘하게 된 분야를 노력하고 시간을 많이 쏟아서 얻은 것뿐이고, 나는 다른 분야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걸 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학창시절 난 남들보다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을 잘했고 어학연수는 가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남들이 여러 자격을 갖추러 다닐 때, 난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해봐서 지금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하다.
나는 항상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고 비교해왔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었고
더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고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을 덜 자고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감.
시간을 쪼개서 관리해야 한다는 긴장된 삶.
피곤해도 쉬면 안 될 것 같았던 내가 내게 준 강요.
우리는 서로가 보내온 시간들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다른 것뿐이었는데,
급하게 쫓아가려 내 자신을 스스로 괴롭혔던 것에 대해 반성했다.
누군가 내게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을 반복하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하며 살았던 20대가 불행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또 곁에 누가 있는지
이제는 내가 내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야 남들과 비교해온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 요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중학교 동창 진영이 직장에서 돈 많이 벌고 성공했다는데?, 부럽다. 나는 언제 돈 모으냐?’
‘그래?’
이제는 나에겐 깃털같이 가벼운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