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이번 입원은 1년 반 만이다. 첫 입원의 이유는 허리뼈였다. 다음은 어깨 탈골. 그다음은 또다시 허리뼈. 나이가 들면 뼈, 관절 건강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어쨌든 점점 병원을 찾으시는 주기가 짧아지신다.
이번에는 생각 보다 병의 치료가 빨랐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경과가 좋았다. 그래서 일주일 후 퇴원하게 됐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끔 속이 답답하시다며 산소 줄을 다시 꽂으신다고 한다. 주치의는 산소포화도에는 문제가 없으니 산소 줄을 빼라 하고, 어머니는 속이 답답하다 하시며 꽂으시고. 그럼 속이 답답하지 않게 뭔가 주사를 좀 놓아 달라고 하고, 그리고 이내 괜찮아지셨다고 하고.
나는 이 모든 걸 간병인을 통해 리포팅받았다. 급하게 구한 간병인은 기대 이상으로 전문적이셨고, 전문 용어는 사용하지 못해도 정확히 핵심을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더 궁금한 게 생기면 나는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를 건다. 담당 간호사는 보호자와의 통화가 익숙한 듯 팩트를 전달하는 것 외에 본인의 생각도 말씀해 주신다. 나는 어떤 가족들보다 어머니 담당 간호사와, 어머니 간병인과, 그리고 요양보호사와 어머니 상태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허심탄회하게 한다. 노인 한 명을 돌보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정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내 어머니 돌봄 동료들에게 정을 붙인다. 또, 또, 또.
내 돌봄 동료들은 모두 그리고 나도, 어머니가 왜 속이 답답한지 안다. 에어컨이 나오겠지만, 온도 습도 관리야 되겠지만, 다인실에는 환자의 2 배수의 사람이 상주한다. 환자 한 명에 보호자 또는 간병인 한 명씩, 만약 6인실이라면 총 12명. 필요에 따라 커튼이 닫히고 열린다. 자연 바람이라고는 드나들기 힘든 구조. 우리가 다 아는, 병원에 며칠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전설의 그곳. 그 답답한 입원실.
내가 생애 첫 수술을 받았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아먹고 잤다. 창가였는데도 불구하고 곧 공황발작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고 안절부절못하는 마음만 들었던 그때. 그때는 몰랐는데,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됐던 것 같다.
남편이 큰 사고로 입원했을 때, 건너편에 80대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셨다. 당일 뭔가 수술을 받으셨다고 들었고, 계속 속이 답답하다고 하셨다. 주치의와 간호사와 보호자가 들락날락, 다들 답답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왜 자꾸 답답하다고 하냐, 숨이 안 쉬어지냐 소화가 안 되냐, 답답하다는 것의 원인을 찾으려면 설명을 제대로 하셔야 한다.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갔다. 건너편에 앉은 나는 알겠는데, 생판 남인 나도 알겠는데, 저 사람들은 정말 과연 그 이유를 모르는 건가. 내 남편이 조금만 덜 위중했다면, 나는 가서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들 모르시는 건가요? 진짜요?'라고.
자꾸 속이 답답하시다는 어머니를 퇴원시켜도 될까, 의사들은 퇴원하라는데. 혹여나 집에 가서 하루 만에 다시 병원에 오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밥도 잘 잡숫고 잠도 잘 주무시고 컨디션도 좋으니 시키는 대로 퇴원하면 되지 않을까. 이미 퇴원하기로 결정했지만 나는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 내 돌봄 동료인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