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어머니의 생애 첫 보청기

by Agnes
89세 어머니께서 생애 첫 보청기를 하셨다.


보청기 값은 꽤 비싸서

과연 보청기를 해 드릴 것인가 결정하는 데에도 꽤 오래 걸렸다.


아니 사실 늦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귀가 안 들리면 다른 신체 기능들의 노화가 가속될 것이고

더불어 치매도 빨리 올 수 있으므로

본인의 부모님이라면 지금이라도 해 드리겠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갑자기 귀가 잘 들리게 되는 것은 노인 입장에서는 공해일 수 있으므로

하루에 1시간씩 시작해서 점점 끼는 시간을 늘려야 하겠고

들리는 소리의 음량 또한 점점 잘 들리게 해야지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게 하는 건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나이 들면 안 들리는 게 순리라며

원래 그런 걸 뭐하러 돈 들여 보청기를 하냐며

자기는 절대 안 낄 테니 하지도 말라며 반대를 오랫동안 하셨지만

결국은 함께 사는 자식이 답답함을 못 이겨 하게 되었다.

본인은 할 말씀을 다 하시니 남의 말은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같이 사는 자식은 해야 할 말이 있으니

들으셔야 하는데 안 들으시니

자식들의 필요에 의해 보청기를 하게 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어머니가 생애 첫 보청기를 끼신 날 전화를 드렸다.

우리 어머니는 항상 쩌렁쩌렁한 말소리로 전화를 받으셨었기에

아직 짱짱하시다, 건강하시다, 이런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런데 귀가 잘 들리시니 우리 어머니의 대화에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동안은 사실 들리지 않으니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웠던 것이다.

듣고 묻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은 그저 배경이었을 뿐 본인 하고픈 말을 하셨던 거다.

뭘 물어도 망설이셨고 주저하는 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목소리는 좀 작아졌고 힘이 없어졌다.


이제는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못 들으신다는 전제하에

해서는 안 될 말을 본인 앞에서 가끔 했다.

어머니의 거취와 어머니의 안위에 대한 이야기도 본인을 앞에 두고 했었다.

어차피 들리지 않으시고

뭘 말해도 본인의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앉아서 만리장성만 쌓은 지 십오 년 째다.


물론, 한 달만에 방문한 어머니는 귀찮으시다며 보청기를 거의 끼지 않으셨고

보청기는 항상 방전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선택이고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과 모르시는 것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정말 어떤 게 어머니가 진정 바라는 것인지

진정 어머니를 위한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아니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해 주는 게 맞긴 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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