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8090 할머니를 찾습니다.

by Agnes

어머니의 친구가 놀러 왔다.


온 가족이 모여서 어머니 생신 파티를 한 후, 미역국을 끓여 놓기 위해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며칠간 비워 둬 냉기를 뿜는 집에 보일러를 돌리고 늘 그렇듯 창고와 냉장고를 둘러보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방문객이 거의 없는 이 집에 누가 왔나 의아해 나가 보니, 어머니보다는 조금 젊어 뵈는 할머니가 서 계신다.


아니, 싹 다 생일잔치 하고 왔구먼.
아니, 여기서 30분을 기다렸어.


이 엄동설한에, 들어가 바람 피할 곳도 없는 단독주택 바깥 골목에서 30분을 정말 기다리신 걸까.

아주버님도 형님도 남편도 처음 본다는 그분은 30년 전-어머니가 살던 동네가 없어지기 전-한 동네 살던 이웃이라 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내 남편의 고향은, 30년 전 리조트가 생기며 싹 다 없어졌다. 두메산골 마을 사람들은 땅 크기에 맞춰 리조트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여기저기로 이사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웃도 친구도 없다. 옛날에는 친척이 곧 이웃이었는데, 덕분에 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진 것 같다. 나이 60 넘어 이사한 시내 한복판 단독 주택에서, 친구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게다가 아침이면 일 나가는 삶을 팔십 중반까지 하며 사셨으니,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알기 어려우셨을 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어머니는 야는 누구고 야는 누구고, 야는 큰 애 색시고 야는 손주고 설명하기 바쁘시다. 다들 잘 커서 다들 잘 됐다고.


다들 달 컸지, 잘 되고. 잘 됐네.
근데 왜.
아니, 어머니를 왜 이런 3층집에 살게 해 그래.
징역 살이지 이게, 어디 가지도 누가 오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두서없는 자랑을 휘적휘적 손을 저으며 흘려들으시더니 그 말을 하셨다. 놀러 오지도 못 하게 왜 이렇게 높은 층에 모시냐고. 우린 입이 있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렇구나. 우리 어머니가 못 나다니시는 것뿐 아니라,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못 올라오게 하는 것도 계단의 존재구나.


삼십 분을 기다렸다는 말과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열 번 정도 주고 받으신 후, 이제 그 옛날 이웃들의 근황 이야기가 시작됐다.


OO는?
죽었지. OO는?
그이도 죽고. 다 죽고 없어.
작년엔가 언젠가 죽었지. 다 죽었어.


친구.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어머니에게는 이제 친구가 다 사라졌구나. 그리고 몇 안 남은 친구분들조차 못 오게 막는 게, 저 계단이었구나.




결혼 전 예단으로 침구를 준비해 간 어느 날. 큰 시누 집에 가니 내 어머니와 이웃 할머니들이 모여 계셨다. 내가 보기에 비슷비슷하게 생기신, 허리가 조금 굽고 허리가 조금 더 굽은 할머니들은 옹기종기 앉아 새색시를 기다리고 계셨다. 말간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이쁘다', 색색의 예단 이불을 만져보며 '곱다', 어머니는 꽤 의기양양해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어머니 연세가 75세였다. 어머니가 언젠가 그런 말을 하셨었다. 칠십 다섯만 먹었음 좋겠다고. 아마, 친구도 있고 감자도 캐러 다닐 수 있었던 그때를 말하셨던 것 같다.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20대, 30대가 아니라 75세라니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때 그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때의 어머닌 정말 다른 사람이셨다. 그때는 만두도 순식간에 100개씩 만드셨고 도라지도 금방금방 산처럼 깎아 쌓으셨고 설거지도 휘리릭 하셨다. 날라다니셨다.

지금은 그저, 앉아만 계신다.


그땐 정말 진짜 몰랐다. 이렇게 그 시절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질 줄은. 이렇게 어머니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줄은. 이런 걸 보면 좀 겁이 난다. 살면서 또 얼마나, 내가 짐작 못한 감정이 미래의 나에게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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