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마음

by Agnes

어머니의 요양병원 입소를 하루 앞둔 주말 저녁, 시간이 되는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약 없이도, 주사 없이도, 그 무엇도 하지 않았는데 컨디션이 좋다 하시면서 잠자리에 누우셨다. 무려 2주 간을, 허리가 아파 누울 수 없다면서 앉아 주무셨다고 했는데. 왁자지껄한 자식들의 말소리,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기척들을 들으며, 어머니는 참 좋으셨나 보다. 본인에게 익숙한 간질간질한 소리들을 들으며 달게 잠을 주무셨겠지.


가족들의 소리. 마음이 놓이는 소리들. 명절이 좋은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91세가 되신 어머니께서는 응급실에 가는 횟수와 구급차를 타는 횟수가 급격히 많아지셨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밤이고 낮이고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는 통증에 지치고 가족들은 간병에 지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요양 병원을 알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급격히, 아이가 돼 가셨다.


가능한 자식들이 돌아가며 연차를 쓰고 휴가를 내고 애를 써 봐도,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는 병원 출입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가시기에 적당한 요양병원을 찾던 중, 우연히 펴든 시집에서 정말 우연히, 어떤 글을 읽었다.


......
이제 전기솥은 고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면 버릴 만한 날을 찾을 것이다

박준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초복 中


그런 건가. 어머니의 몸을 이제 고쳐 쓸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가. 혹시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갖고 만 것인가.


상황은 빠르게 돌아갔고, 어떤 우울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겨를이 없이 눈앞에 자질구레한 일들이 산재했다. 사시던 곳을 정리해야 했고, 아이가 입소할 어린이집을 알아보듯 어머니께서 입소 가능한 병원들을 알아봐야 했고, 전입 신고와 말소 신고를 알아봤고, 각종 관리비와 병원비를 챙겼다. 많은 약들을 버리고 더 많은 새 약을 받아왔고, 하루는 정신과를 하루는 심장내과를 또 하루는 한의원을 돌아다녔다.


어머니께 비타민 주사를 놔 드리려 동네 병원을 방문한 어느 날. 병원을 나서는 길, 담당 의사가 물었다. "근데, 손녀예요?" "아니요. 막내 며느리예요."


신혼 초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나는 어머니를 졸졸졸 쫓아다녔다. 어머니는 휘적휘적 익숙한 시장을 가로지르며 고기를 사고 북어를 사고 떡을 샀다. 모두 어머니가 결정했고 어머니가 값을 냈다. 나는 그저 어머니에게 한 손을 맡기기만 하면 됐다.

그때도 그랬다. "근데, 손년가봐?" "아니유. 내 막내 며느리유."


70대의 어머니는 그때 날라다니셨는데. 이건 추억인가 환상인가. 다시 가서 확인할 수 없고, 이제는 내 기억이 맞는가 싶게 모든 것이 달라져버려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날라다니셨던 어머니가 실제하기는 했는가. 모두 내 환상 속 이야기가 아닌가.


전화할 수 없는 마음. 요양 병원에서는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본인에게 전화해서 물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그저 잘 계시겠거니. 처음 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냈을 때,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아이를 보고싶은데, 어린이집과 달리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선생님과 아무 때나 통화할 수도 없는 것이 그렇게나 답답했다. 지금 내 마음은 딱 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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