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Jan 23. 2024

브로큰 코리안, 세상

이번 학기 내 담임 반 학생 수는 13명, 국적은 프랑스, 베트남, 스페인,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홍콩, 알제리, 일본, 태국, 총 9개국이다. 이들의 공용어는 한국어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그들 끼리 놀 때는 영어다. 체감 상 점점 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동남아시아 학생들은 영어를 전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안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한국어를 배우러 왔지만 영어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다. 그리고 각 국가에서 현지화되면서 일본인이 하는 영어는 잰글리쉬(Janglish), 싱가폴인이 하면 싱글리쉬(Singlish) 이렇게 다시 그루핑 된다.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특유의 억양과 발음, 문법 구조 등이 도드라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데, 그게 다시 범주화된다. 콩글리쉬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은 것이, 콩글리쉬라 말하면 한국인이 사용하는 특정 단어의 사용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3세계 사람들이 하는 영어는 처음에 듣자마자 바로 알아듣기 어렵고, 대화를 반복해 봐야 익숙해진다.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처음에는 이게 영어인가 싶지만 곧 익숙해진다. 아마 내가 하는 영어도 그렇지 않을까. 가끔 영미권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이 정도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자꾸 못 알아듣는 척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외국인이 하는 영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한데 말이다.


교실에서는 종종 '브로큰 잉글리시'가 발생한다. 9명이서 누구는 프랑스식 영어, 누구는 태국식 영어, 누구는 스페인식 영어를 하고 있어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의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다들 조금씩 "브로큰"하긴 하지만 의사소통은 된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예전에 지인에게 들은 얘긴데, 베트남어를 처음 배울 때 현지인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어는 성조도 많고 발음이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이 베트남어를 하는 걸 많이 들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잘 들으면 사실 추정되는 발음조차도, 생경하기 때문에 그게 베트남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아마 지금은 베트남어를 하는 외국인이 그때보다는 많아졌기 때문에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브로큰 코리언'을 듣고 있는 건가.

나는 평균 10개 국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한국어 말과 한국어 발음을 매일 듣고 본다. 보통 한국인이 들으면 좀 이상하겠지만, 나는 매우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다.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이 있었는데, 지난번 태국 여행 갔을 때 태국인들이 하는 영어를 제일 잘 알아듣는 건 우리 가족 중 나였다. 왜냐하면 나는 태국인들이 하는 영어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태국어 발음이 약간 살아 있는 태국 사람들의 영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진다면, 그래서 각종 억양과 각종 발음과 각종 표현 등이 조금씩 변주된 한국어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사용한다면. 그렇다면 '브로큰 코리언'이라는 신조어가 발생하게 되는 건가. 지금도 외국인의 발음을 제일 잘 알아듣는 건 우리 한국어 교사들이다. 


사실 이미 시작됐다고 느낀 것이, 아이돌이나 배우들과 관계된 영상 또는 기사의 댓글들을 훑어보면 종종 '브로큰 코리언'이 눈에 띈다. 전 세계 언어로 댓글들이 달리면서 한국어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이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 사람이 직접 작성한' 댓글일까 아니면 파파고 같은 번역기를 그냥 돌려서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를 반복한 걸까. 아무튼 한국인이 쓰지 않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건 그냥 오늘 하루 심심했던 한국어 교사의 상상이지만, 

그 언젠가 진짜 그런 날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겠다.



이전 04화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랑하는 선생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