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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12. 2024

밥과 마음의 역학

채종협이 나오는 일드를 보다가

나는 요즘 채종협이 나오는 일드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제목은 <Eye Love you>. 상대방의 눈을 보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인데, 여자 주인공은 오직 남자 주인공인 채종협의 마음만은 듣지 못한다. 채종협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모르므로, 채종협의 마음은 들리지 않는 것.


매우 말랑말랑한 이 드라마에서, 채종협은 유일한 한국인이다. 실제로도 설정으로도 꽃미남이고, 일본어에 아주 익숙하지는 않은 캐릭터다. 그래서 약간 귀엽고 서툰 채종협의 일본어 대사는, 일본어를 조금 아는 내게 아주 귀에 쏙쏙 박힌다.


첫 시작은 밥이었다.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는, 여자의 집에 종종 음식을 배달하러 간다. 따뜻한 밥을 전하는 관계, 시작부터 다정하다. 남자는 종종 여자에게 묻는다.


"밥은 먹었어요?"


물론, 이것은 호감이다. 걱정되고 신경 쓰이고 마음이 가는 누군가에게 '밥을 먹었냐'라고 묻는 한국인의 정서다. 여자도 그렇게 받아들이며 관계가 진전이 되는데, 어느 날 '이게 그 뜻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인터넷에 한국어로 '밥 먹었어요?'가 무슨 뜻인지 찾게 된다.

여자가 찾은 유투버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사람이 '밥을 먹었어요?'라고 묻는 것은 그냥 인사말이다. 그러므로 오해하지 마라."


아...... 그렇긴 하다. 그렇긴 한데, 채종협의 '밥은 먹었어요?'는 분명 호감의 시그널이었는데. 나는 내가 다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겨울 현장학습을 갔을 때, 무척 추운 날이었다. 종종 거리며 학생들이 모였는데, 한국의 겨울처럼 추운 날씨를 겪어보지 않은 학생들은 입성이 매우 부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고향에 돌아가면 입지도 않을 거고 심지어 무거워서 가지고 가지도 않을 겨울 옷들을 구색 맞춰 사기란 어렵다. 겉옷만 사면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사람처럼 월동 준비를 제대로 하려면, 목도리에 양말에 장갑에 두꺼운 겨울용 기모 바지에 살 것이 백만 가지다. 하지만 더운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여름용 양말과 여름용 티에 겨울 재킷을 걸쳤으니 우리와는 추위의 결이 다르다.


그날도 제일 먼저 도착한 여자 학생이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데, 뭔가 어설펐다. 어우, 저래가지고 어디 바람이 막아지나.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목도리를 다시 여며 주면서 말했다. "너무 춥죠?" 그때 우리 반 남자 학생이 씩 웃으며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역시 한국 여자"라고. 자기 한국 여자친구가 항상, 자기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목도리를 여며 주면서 "잘 다녀오라"라고 말한다나.


이렇게 어린아이 챙기는 듯한 다정한 태도는 한국사람들 특징이라고. 


아... 나는 그때 좀 부끄러웠다. 우리 반 학생들은 그래도 스무 살이 넘은 어른들인데, 내가 너무 내 아들 다루듯 했나. 혹시 들켰나.


아침부터 '아침 먹었어요?'라고 물어 대는 나는, 어설픈 입성을 보면 추위에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 대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사람인가 보다. 우리는, 한국사람은, 밥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고 속이 따뜻해지니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런 밥을 거르지는 않았나, 내가 마음을 쓰는 누군가가 그런 존재인 밥을 제대로 먹고 있는가, 코로나로 오랫동안 밥 한끼 같이 먹지 못하는 삶을 겪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서글프고 안타까웠나. 언제고 사랑하는 사람과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돈과 시간과 사정이 되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없이 행복한가. 그런 생각이 든, 2024년 3월 1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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