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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07. 2024

한국어 선생님에게 필요한 감수성이란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많고 많은 주의 사항을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외모에 대해 되도록 언급하지 말 것, 왜냐하면 칭찬하고픈 선의라 하더라도 그것은 외모 평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2) 초급학생들과 영어로 이야기하지 말 것. 비영어권 화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음. 만약 한국어가 아닌 특정 언어로 소통을 해야겠다면, 교사는 반 구성원 모두의 언어로 소통 가능해야 함. 그게 공평함. 한국어를 배우러 와서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음. (3) 한 반에 중국계 학생들이 모여있는 경우, 나라와 민족에 대한 부분이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조심하고 예의 주시할 것. 일례로 중국 학생들이 가끔 중화권 나라는 모두 '중국'이라고 반복하고 강조해서 말할 수 있음. 이는 역사와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지므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음. (4) 가족 구성원에 대해 자세히 묻지 말 것. 이혼 가족, 재혼 가족, 입양 가족, 등의 경우 언급을 꺼려할 수 있음. 등등. 이외에도 많은 주의사항이 있지만, 하나하나 다 열거하기에는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너무 고달팠던 시절에는, 이건 뭐 봐야 할 눈치의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고, 혼자 자조적인 한탄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문제도 아니었다.


초보 한국어 교사 시절, '냉장고'라는 단어로 인해 아주 당황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하나 둘 물건의 개수를 세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과 가구의 이름을 배우는 중이었다. 이때쯤 반드시 등장하는 나의 딴소리 레퍼토리가 있는데, 나는 자주 한국사람들의 냉장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집에 냉장고가 한 대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은 보통 집에 냉장고가 두 대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두 대인데, 왜 냉장고가 두 대나 필요할까? 물으면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흥미로워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좀 살았거나 한국 지인이 있는 경우, 눈치 빠른 학생의 경우는 바로 말한다.


 "아마, 김치.....?" 이렇게.  


그럼 나는 물개 박수를 치며 말한다. '오, 센스 있는데? 어떻게 알았어?' 이런 뉘앙스를 마구 뿜으며, 한국사람들은 가을에 김치를 하는데 양이 정말 많다. 그래서 김치 전용 냉장고가 있다. 거기에 고기도 넣고 맥주도 넣는데 나는 보통 맥주 냉장고라고 부른다. 물론 요즘은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김장이란 연례행사가 없어지는 추세다...... 쩜쩜쩜. 이렇게 순조롭게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의 풍경인데, 그날은 좀 달랐다. 학생 한 명이 집에 왜 냉장고가 있냐고 재차 물은 것이다. 본인 나라에는 집에 냉장고가 있는 집이 거의 없다고. 우리는 어렴풋이 이해했고, 모두 살짝 잠깐 멈추고 말았다. 다행히 학생 구성원들은 모두 완전한 성인이었고(질문을 한 학생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스무 살 남짓이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는지 모두가 이해했다. 그때 당시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한국 주재원이거나 주재원의 가족들이어서, 30대 후반인 내가 학생들보다 어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뭔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도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슬렁, 넘어갔다.


이렇게 내가 예측할 수 없었던, 나는 전혀 몰랐던 어떤 차이를 알게 될 때, 나는 정말 이 직업의 신비를 경험한다. 세상에, 집에 냉장고가 없다니. 그 나라는 더운 나라였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 다니는 외국인들 중, 집에 냉장고가 없는 학생이 있을 줄이야. 학생들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실감한 날이었다.



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먼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는 문화에서 자라나는 것,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 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중략) 옛 바이킹 생존 전략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호프 자런, <랩걸>, 알마 출판사, 23쪽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수업을 한 지 벌써 십 년이다. 그동안 나는 많이 용감해졌고 많이 요령도 생겼다.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들은 것 경험한 것 본 것도 많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 그동안 난 뭘 알았다고 생각한 것인가 상념에 젖게 된다.


요즘 나는 성인지 감수성, 인권 감수성,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내가 더 많이 숙고하고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실제로 한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과 사고를 학생들이 하기 시작해서다. 문화 차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다르고, 나는 점점 나이가 많아지고 학생들은 점점 어려진다. 한국에 왔으니 어느 정도는 한국식으로 살아야겠지만, 여기는 전 세계인이 모인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더 유연해져야 한다.


너무나도 변수가 많은 곳이 한국어 교실이지만, 한국어 교실은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옆에 앉아 있는 반 친구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긍정한다. 부정할 마음이 전혀 없다. 학생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더 인간적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르치는 나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번 학기가 끝나는 날, 57세의 학생이 졸업 연설을 했다. 나이 많은 본인을 긍정해 준 반 친구들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는 말, 대부분의 교사보다 나이 많은 학생인 그녀를 잘 품어준 한국어 교사들 덕분에 잘 지냈다는 말, 50대 후반의 어학연수는 생각보다 즐겁고 할 만했다는 말, 어학연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단지 노안이었다는 말. 그런 말을 들으며 나는 진정 이 직업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 직업을 긍정할 것인가. 이건 거의, 덕질의 수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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