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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24. 2024

에필로그 - 요양병원과 종합병원 사이의 핑퐁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근래 보기 드물게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숨찬 증세가 심해 보였고 눈빛도 흐려져 있었다. 그리고 보통은 면회를 가면 휠체어를 타고 로비로 나오시는데, 그날은 침대에서 내려오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기분도 매우 안 좋아 보였는데, 그건 아마도 추석 연휴에 계획했던 2박 3일 외박 일정이 무산됐기 때문일 거다. 주치의가 어머니 외박 금지 결정을 내린 데에는, 어머니의 컨디션 저조의 이유도 있지만 끝나지 않는 의료파업의 이유도 크다고 했다. 보통 어머니 연세의 환자는 언제 어느 때고 응급실 입실이 가능하다. 외래 진료 시에도 항상, 어머니 연세라면 응급실 접수가 불가능할 리 없고 외래로 오면 대기 시간이 길어 버티지 못하실 테니,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안내를 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구급차를 타도 산소포화도가 아주 낮지 않은 이상 응급실에서 받아주지를 않는다고 한다. 주치의가 외박 금지 결정을 내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추석 연휴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환자와 가족의 마음은 알겠으나 위급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의료 시스템이 아니므로, 상상 못 할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병원에서는 아마도 어머니 폐에 또 물이 찬 것 같다며-어머니는 최근 1년 사이 폐에 물이 차서 빼는 시술을 반복해서 받고 있다-조만간 종합병원으로 전원 해서 장기 치료를 받은 후 요양병원으로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종합병원에 문의해 보기로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연휴를 보냈는데, 연휴가 지나자마자 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서둘러서 외래 진료를 앞당기는 게 좋겠다고. 우리는 당연히 외래 진료를 서둘러 앞당기고, 병원 동행이 가능한 사람을 찾고, 그랬다.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바로 몇 달 전에 우리가 한 모든 과정이다. 데자뷔로 느껴질 정도다. 요양병원의 소견을 받고 서둘러 종합병원에 가면, 종합병원 담당의는 아직은 괜찮으니 요양병원에서 일상 관리를 받으시다가 좀 더 상태가 심각해지면 오셔도 된다고 말한다. 중증이 아니므로 입원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심각해질지 모르니 사전에 치료를 시키고 싶어 한다. 양쪽 의사의 소견 모두 이해가 간다. 종합병원으로 전원하고 검사받고 기다리고 입원 생활하고, 그 모든 일들은 어머니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다. 종합병원에 하루만 있어도, 어머니는 눈에 띄게 수척해지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루다가, 중증이 될 때까지 버티다가, 그때 비로소 가는 게 맞는 일인지. 그 시간만큼 고통을 참고 버티는 일일 텐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지만, 나는 이렇게 핑퐁 게임의 당사자가 돼 버린 아흔한 살의 어머니가 너무나 애처롭고, 서글프다.


신들은......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었다

샘 밀스 <돌보는 사람들> 2022, 정은문고


며칠 전부터 이 문장이 계속 생각이 났다.

'신들이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 요양병원에 가면 어머니 보다 상태가 심각한, 그저 누워 계시는 노인 분들이 매우 많다. 누워 계시는, 고통스럽게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 신들이 인간의 죽음을 대할 때에, 진지할 수는 있지만 제발 가차 없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왜 나는 저 '진지하게'라는 단어가 계속 '가차 없이'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면서 노년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처음에는 '노년'이나 '죽음' 또는 '노화' 등의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책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내가 읽는 모든 책에서 노년은 다양한 형태로 다뤄지고 있었다. 다만 내가 주의깊게 보지 못했을 뿐. 서점에 가면 <출산, 육아> 코너가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를 가진 부모가 읽을 만한 또는 읽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책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수필 코너에 가면 서른을 앞둔, 마흔을 앞둔, 얼마 전 부터는 쉰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책이 많이 있다. 하지만 노년을 위한 코너는 없다. 100세 시대이고,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사회이고, 언제부터인가 노인과 노년은 신문의 모든 면을 선점하고 있는데도.


그래서 <노년을 읽습니다> 코너를 만들어 한동안 읽고 쓰고 있다. 이러한 글들이 한 권의 브런치북으로 완성되기에 적합한지 아직은 모르겠다. 곧 <노년을 읽습니다> 2편을 설계할 계획이다. 좀 더 다채로운 글을 쓸 수 있기를, 나 혼자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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