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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29. 2024

이렇게 유쾌한 노년이라니

8.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한동안 서점에만 가면, 이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 눈에 띄었다. 빨간색 표지에 강렬하고 유쾌한 제목, 책 뒷면에 저 센류가 써 있다.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일본에는 '센류'라는 하이쿠 비슷한 시의 장르가 있는데, 한 사단법인에서 실버타운 입주자-즉 노인들-대상으로 센류 공모전을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실버타운 입주자들은 응모작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하고, 걸작선으로 뽑힌 센류들이 이 책<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에 실려 있다. 무려 11만 수가 넘는 응모작 중 단 88편. 0.08%의 좁은문을 뚫은 작품들이다.


한국보다 고령사회에 일찍 진입한 일본은, 그래서인지 노년의 삶을 쓰는 작가가 많다. 지난번에 읽은 책에서 일본은 노년기도 75세 이전은 전기 노년기 그 이후는 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고 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우리보다 일찍 많은 국민이 노년에 접어들어서인지 노년 인구를 케어하는 것에 좀 더 구조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노년을 읽습니다>라는 브런치북을 쓰면서 읽은 많은 책들이, 일본 작가의 책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최근 읽은 무라세 다카오의 <돌봄, 동기화 자유>, 지난번에 읽은 소노 아야코님의 <노인이 되지 않는 법> 즐겨 읽는 사노요코 작가님의 많은 책들, 내 첫책에서 서평을 쓴 무라이 리코님의 <낯선 여자가 매일 집에 온다>. 모두 노년의 삶을 자주 다루는 작가들이다. 심지어 신춘문예도 시니어 부문이 별도로 진행된다고 하니, 문학계에서도 노년의 삶을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에 맞춰 60세 이후에 등단하는 신예 작가도 많다고 한다. 예전에 박완서 작가님이 살아 계실 때, 본인이 쓰는 것이 노년 문학이라고 종종 말씀하셨었는데.


서점에서 서서 책 중간을 펼쳤는데 펼치는 곳마다 촌철살인,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이 책을 일본어 버전과 함께 주문했다. 사자성어 읽듯이, 시간을 두고 조금 씩 읽어 볼 생각이다.


"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50쪽).

신체 노화에 대한 서글픔을 재치로 승격 시킨 글들. 같은 노년들은 이 센류에 울고 웃으며 한 표를 던졌을 테다. '늬들이 노년을 알아?'뭐 이런 분위기로.


전에도 몇 번이나 분명히 말했을 터인데 "처음 듣는다!" (77쪽)

깜빡깜빡. 나도 이제 자유롭지 못한 기억력의 문제.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지, 당당하게. 나는 20대 때의 내가 기억이 난다. 20대 초반에 첫 직장에서, 상사가 자꾸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을 또하고. 왜 이러실까. 어떻게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나.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난 첫 아이를 낳고 바로 그런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내 상사는 무려 60대였는데.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어요.)


늙은 두 사람 수금원에게 차를 대접한다 (101쪽)

그리고 외로움.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들었을 때, 앞면에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책 제목이 있었고 책 뒷면에는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라는 센류가 있었다. 그리고 또 반려견 반려묘에 대한 언급이 심심찮게 나온다. 반려견의 배려로 이어지는 일상, 반려견에게 뺏겨 버린 배우자의 애정.


모두 다, 외로움과 함께다. 노년이 죄가 아닌 것처럼 외로움도 죄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활자화하고 무엇이든 입밖으로 꺼내야 한다. 그래야 해결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다. 꽁꽁 숨겨 두어 좋은 것은, 첫사랑과의 추억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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