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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09. 2024

환갑과 일자리

6. 최진영 <디너코스>

 <디너코스>는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집 <쓰게 될 것>에 수록된 단편이다. <쓰게 될 것>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단편 하나, 하나, 모두 너무 좋았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 중에서도 밑줄 긋고 싶고 인덱스를 달고 싶은 구절이 많은 '에세이 같은' 소설을 좋아한다. 이런 취향은 뭔가 일반적이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인 것도 같은 것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 임지은 님도 같은 말을 썼다.


소설과 에세이엔 분명히 겹치는 부분 또한 있잖아요? 저는 작가님 소설에서 그 교집합을 봐요.

최진영 <쓰게 될 것> 2024, 안온북스. 작가 인터뷰 <그래서 계속 쓸 수 있어요> 중


60 즈음의 부부가 30 즈음의 두 딸과 환갑을 맞아 중식당에 간다. 중식당 이름은 얄궂게도 <화양연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가족이 모여서 환갑 모임을 하기에 화양연화란 이름의 식당은 너무나 적당하다. 왜냐하면, 아직은 늙지 않은 부부와 인생의 황금기에 있는 서른 즈음의 두 딸, 그 '시기'때문이다. 나는 서른 즈음에 결혼해서 다음 해 아이를 낳았다. 내 엄마, 아빠는 지금도 종종 이야기하신다. 도현이 어릴 적, 안고 다니고 업고 다니고 걸려 다닐 때, 그때가 참 좋았다고. 본인들도 삼십 대 중후반 언제쯤엔가, 부모 젊고 애들 어렸던 그 시절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고.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빠가 술만 드시면 반복했던 그 말. "부모 젊고 니들 어리고, 참 그때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내 아빠가 얼마 전, 아니 바로 지난주, 수술을 받으셨다. 절대 가벼운 수술이 아니었는데, 건강한 아빠는 건강하게 수술을 잘 받고 잘 회복 중이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가족의 화양연화는 지나갔구나. 우리 가족의 호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구나.


아빠는 아직도 일을 하시는데, 이번 수술 때문에 회사에 한 달의 병가를 내셨다. 더 쉬시거나 아니면 이 기회에 일을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 나에게 아빠는 말한다. "쉬면 또 뭐 하냐?" 아빠 인생은 70 평생, 너무나도 회사원이었다. 아빠의 딸답게 40 평생 너무나도 회사원인 나도, 그 말을 이렇게 받는다. "그치, 쉬면 또 뭐 해. 그냥 다녀." 50년 넘게 회사에 다니는 아빠와, 20년 넘게 회사에 다니는 딸은, 생각의 폭이 좁아 일이 나를 살게 했다고 너무도 쉽게 인정해 버린다. 일 안 하면 또 뭐 할 거냐고.


우리 아빠도 회사 다닐 때는 누군가에게 끔찍한 존재였겠지? 생각하면 서글프면서도 화가 났다
(203쪽)


요즘 들어 아빠는 회사에서 어떤 상사였을까, 30대의 아빠는 어땠을까, 50대 명예퇴직할 때의 아빠는 회사 속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작가가 말하는 '끔찍한 존재'는 회사 상사인 부장이다. 언젠가 나도 직장 상사가 끔찍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상사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 회사에 다닌다면 나 또한 '끔찍한 존재'가 될 것임을 아찔해하며 나는 사직서를 썼다. 하지만 내 아빠가 회사에서 '끔찍한 존재'로서 가장의 자리를 지켰을 수도 있음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 또한 지금의 아빠의 나이인 76세가 되었을 때 여전히 남의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5년 전 오석진은 명예퇴직했다. 부장 다음으로 올라갈 자리도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략) 오석진은 그동안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계속하길 원했으나 55세 경력직을 채용하는 회사는 없었다.
(205쪽)


55세 경력직. 55세 경력직이 본인의 경력을 살려서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전문직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전문직은 적어도, 조금은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지금도 종종 그 에세이를 펼쳐 본다. 조정진 작가님의 에세이 <임계장 이야기>.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뜻한다는 그 '임계장'이야기.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얼마나 인생이 서글펐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60세 이후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나를 어디에서 받아줄까.


다시 최저 시급의 세계로 들어설 오석진을 바라보며 오나영은 '백세시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정말 백 살까지 산다면 오석진은 이제 절반 조금 넘는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황혼보다 정오, 디너보다 런치에 가까운 나이.
(221쪽)


책 속 아빠는 이제 환갑, 오랫동안 했던 일은 퇴직했으나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바리스타로 가기로 말했다고 가족들에게 말한다. 그 말을 되뇌는 딸의 생각이다. '최저 시급의 세계'로 다시 들어설 환갑의 아빠. 하지만 인생 기니까 디너보다는 런치에 가까운 나이인 환갑의 아빠. 런치인데 환갑이라니. '브런치'에서 '브'만 뺐을 뿐인데 환갑이라니.


노인 일자리, 시니어 일자리 등의 표현에 매우 익숙하다. 노인 일자리 창출, 시니어 일자리 박람회 등. 왜 직업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단어를 쓸까. '직업'이라는 단어와 '일자리'라는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 같아 사전에 찾아보니, 다르다.


직업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일자리 :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의 직업


내가 느낀 게 맞았다. 직업에는 '적성'과 '능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일자리에는 '수단'이라는 단어만 들어간다. 나의 미래를, 지고 들어가고 접고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속상하다.


아빠도 염색을 하나? 미용실에 가는 걸까? 아니면 셀프 염색을? 아빠가?
그동안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221쪽)


노인이 된 내 아빠와 엄마. 어느 날 문득, 내 부모가 노인임을 실감하는 시점이 있다. 바로 노인의 삶을 내 부모가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가 궁금해지고 걱정되는 시점이다. 아빠 머릿속 흰머리를 발견할 때가 아니라, 아빠는 얼마의 주기로 어디서 머리를 염색하는지가 궁금해지는 시점. 엄마의 허리가 살짝 젖혀진 노인 특유의 걸음걸이를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엄마는 언제부터 허리가 아팠는지가 궁금해지는 시점. 왜냐하면, 내 흰머리가 속수무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내 노안이 감당할 수 없게 심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노년 또한, 공감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인가 보다. 내가 노인이 돼 보지 않고서는 실제 그 상실감은 가늠하기 어려운 영역인가 보다. 이렇게 책을 읽는 것 만으로는, 어려운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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