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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22. 2024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4. 그림책 <레미 할머니의 서랍>

요즘 내가 재미 붙인 장르는 그림책이다.


조금 긴 그림책, 에세이를 (읽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느낌의 그래픽노블,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장르는 그런 류이다. 얼마 전 읽은 이수연 작가님의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가 그랬고 프랑스와 플라스 작가의 <마지막 거인>이 그랬다. 모두 이른바 "에세이 파(派)" 그림책들이다.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대학 동창들에게 굳이 여러 번 책 사진을 보내며 추천의 추천을 거듭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 옛날 내 친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학부 전공 특성상, 친구들의 상당수가 당시 가구, 인테리어 업종에 취직했었다. 그 아이들의 청춘이, 그 책 속에 모두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읽으면 함께 노스탤지어를 느낄 만한 책, 그래서 '꼭 읽어 보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거인>은 내 아이에게 일독을 계속 권하고 있다. 책의 에필로그에 들어 있는 최재천 박사님의 글까지, 책의 겉 표지부터 마지막 한 줄까지 모두, 잊히지가 않는다.


이번엔 <레미 할머니의 서랍>이다. 책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소곤소곤 속삭속삭, 즐거운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소곤소곤 속삭속삭.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랑하는 나의 눈에 쏙 들어온 책. 의성어와 의태어로 대표되는 언어답게, 역시 일본 책이었다. 레미 할머니의 서랍 제일 아랫칸에는 모든 병, 박스, 리본 등이 들어있다. 이른바,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예쁜 것들'이다. 예쁘게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 물건들의 보고. 때가 되면 사탕병은 잼통으로 거듭나고, 리본은 고양이의 머플러가 되고, 유리병은 꽃병이 된다. 그런데 할머니가 불러주지 않아 상심하고 있던 작은 상자, 이렇게 영영 잊히는 것 아닐까 수심이 그득했던 상자, 그 상자를 어느 날 이웃 레오 할아버지가 가져간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이 생긴다.


사이토 린, 우키마루 글 / 구라하시 레이 그림 <레미 할머니의 서랍>


"어쩐 일인가요?"
레미 할머니가 다정하게 물었어요.
레오 할아버지는 수줍게 입을 열었지요.
"레미 씨, 괜찮다면 나와 함께 살지 않겠소?"

사이토 린, 우키마루 글 / 구라하시 레이 그림 <레미 할머니의 서랍> 2022, 문학과지성사


이 '세기의 프러포즈'를 들으며, 서랍 속은 시끌벅적 난리가 난다. 너무 좋아서, 너무 부끄러워서, 너무 로맨틱해서. 할아버지에게 선택 되었던 작은 상자는 할머니를 위한 반지 상자가 되어 등장하고, 서랍 속 유리병들은 세상에 나와 꽃병이 된다.


"나와 결혼해 주지 않겠소?"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살지 않겠소?"였다. 이 장면에서 얼마나 풋풋한 설렘을 느꼈던지.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본어 원서를 보지 못했지만, 일본어로도 분명 '결혼'이 아니라 '함께 살다'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왠지 그랬을 것 같다. 책을 시작할 때는, 그냥 말랑하고 귀여운 할머니의 오래된 소품들에 대한 이야기일 알았는데, 이런 반전이 있다니. 책을 추천해 책방 사장님께서는 '완벽한 결말'이라고 했다.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이 책을 한동안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반복해서 봤다. 그리고 박완서 님의 단편 <마른 꽃>을 떠올렸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 주인공이 노년의 어느 날 멋진 신사를 만난다. 얼마 만의 달콤한 연애 감정인지, 두근두근한 데이트를 상당 기간 지속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함께 살지는 않기로 결정한다. 노년의 연애란, 같이 산다는 결말로 이어지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의사의 처치를 받는 동안 강아지는 더욱 애처로운 소리를 냈고 나는 숫제 그의 품에 안겨서 귀를 막고 흐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짓거리였지만 나는 그 감미로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박완서 <마른 꽃> 1998, 창작과 비평, 42쪽


오랜만의 연애에서, 여자 주인공은 오랜만에 여자가 되고 소녀가 된다. 그리고 자신도 '요사스럽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연애 감정이 너무나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 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같은 책, 43쪽


하지만 주인공은, '사랑하면 결혼한다, 같이 산다'는 그 뻔한 시나리오를 배반한다. 노년의 사랑에 정욕이 빠지니 청춘의 사랑과 뭔가 달랐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배반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이 노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벽한' 재혼 상대를 훨훨 날려 보내고, 그 과정에서 청춘의 사랑과 다른 점을 '정욕'이라는 단어를 써서 통쾌하게 언급한다. 역시, 박완서 님의 글은 이런 통쾌함이 있다.

아, 그립다, 박완서 작가님.


글을 쓰며 소설 전체를 다시 한번 읽어보니, 주인공의 나이가 불과 59세다. 주인공들이 59세에서 60에 이르는 사이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자식들은 모두 시집 장가를 갔고 홀로 된 어머니께 환갑잔치를 해 주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그것이 제일 놀라웠다. 60세 앞뒤의 나이인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둘은 각자 사별을 해 혼자가 되었고 자식들은 둘을 이어주려고 한다. 물론, 25년 전 이야기다. 요즘이라면 60대 부모님을 자식들이 나서서 결혼시키려고 애를 쓰진 않을 것이다. 요즘의 60대는 아직 자주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하는 나이다. 얼마 전 들은 '지인의 지인'의 결혼 소식에서, 신랑 신부는 50대 중후반이었다. 둘 다 재혼이었는데 파티룸에서 진행되는 스몰 웨딩은 매우 경쾌하고 신났다고 한다. 경제력과 안정감과 여유를 가진 이들의 결혼식. 우리가 경험한 결혼식들 보다는 신랑 신부도 하객도 나이가 매우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신랑 신부는 매우 당당했고 그래서 더 멋졌다고 한다.


인생이 길어지고 있으니, 노년의 사랑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드라마에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랑을 하는 60대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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