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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09. 2024

60대, 여성 노년의 이야기

2. 이서수 <엄마를 절에 버리러>

  최근 어떠한 일로 병원 투어할 일이 잦아졌다. 나는 당연히 건강과 질병과 그리고 죽음에 대해 조금은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병원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다가올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며 <노년을 읽습니다>라는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했는데, 실상 노년이란 그렇게 '당연한 듯' 모두에게 오는 시기는 아니라는 것을.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노년이라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 그렇게 당연할 일은 아니다. 수많은 행운이 겹쳐져야 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불행을 겪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노년이 될 수 있다.


나는 원래 '노년기 여성의 노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순자 작가님의 책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고 내 첫 책<연애-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이야기>에 이순자 작가님의 책 서평을 담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삼십 대 중반에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후부터 줄곧 비정규직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내 50대의 노동과 60대의 노동은 어떠할까 종종 상상한다. 70대의 노동과 80대의 노동도 생각해야 하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마음이다. 너무 인생을 멀리 보고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막막함이 하늘을 뚫고 나갈 만큼 심해진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멀리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야 현재를 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서수 작가의 책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는 짧은 단편 소설 3개와 에세이 한 편이 실려 있다. 자꾸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반복된다고 생각했는데, 뒤에 작가가 쓴 에세이를 보니 이것은 작정하고 쓴 엄마와 딸의 이야기였다. 세 개의 작품에서 항상 엄마는 60대이고 항상 엄마는 딸에게 기대어 산다.


어쨌든 나는 엄마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세 명의 육십 대 여성을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이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딸.

이서수 <엄마를 절에 버리러> 2023, 자음과 모음.
작가의 에세이 <무지개떡처럼> 중


나를 '이서수 월드'로 끌어드린 이서수 작가의 첫책 <헬프미시스터>도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플랫폼 노동을 하는 젊거나 늙은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은 가족이었다. 함께 읽은 작가의 책 <몸과 여자들>에도 딸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는 저의 두 딸이 좋습니다. 때로는 싫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론 좋습니다. 그러나 좋다고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싫다고 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서수 <몸과 여자들> 2022, 현대문학


어떻게 이렇게 정치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만 한다.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 또한 시어머니 이야기만큼이나 할 말이 많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새롭게 쓸 자신이 없다. 진부하지 않고 랄하지 않고 신파적이지 않게, 그렇게 담백하게 쓸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서수 작가가 쓰는 딸과 엄마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새롭다.


엄마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혹시 내가 많이 아프면, 도망가.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멀리 도망가.

<엄마를 절에 버리러> 43쪽


아버지를 오래 돌보느라 지친 엄마가, 마찬가지로 오랜 돌봄에 지친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족에게는 이런 진심이 있다. 이런 진심을 내뱉을 용기가 있다면, 가족은 연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 객실 양 끝에 위치한 비상통화장치로 딸과 통화합니다.
2. 딸의 안내에  따라 출입문 비상개폐핸들을 돌린 뒤
3. 출입문을 양쪽으로 밀어 문을 연 뒤 탈출합니다.
4. 선로에 다른 열차가 오는지 주의하여야 합니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 43쪽


작가는 이 단락 하나로, 이 책을 통째로 설명해 버렸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이런 것인가.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60대의 엄마. 노년의 초반이지만 이제 슬슬 세상이 무서워지는, 본인의 지력과 체력과 그런 것들의 노화를 실감하는, 그래서 청년기 자식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엄마의 마음이 역력히 담긴 이 단락. 그리고 사랑이라 말하기에 충분치 않은, 딸에 대한 어떠한 마음.


이 책은 60대 노년 여성의 경제적이지 못한,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다가올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나는 딸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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