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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5. 2022

에미야, 이거 너 가질래?

아낌없이 주고픈 마음

90세 노인이 혼자 사시는 집의 살림살이는 매우 검소하다. 드라마 응팔에 나올 법한 짤순이를 치운 것이 불과 몇 달 전이고, 70-80년대 그때 그 시절 박물관에 가야 있을 법한 스댕 밥상도 아직 그대로 있다. 문을 열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커다랗고 좀약 냄새가 나는 장롱에, 삭아서 청소할 때마다 골칫거리인 창틀에, 장롱 서랍에 깔린 신문의 날짜는 무려 90년대였다.


가구와 집기류 그렇다 치더라도. 음식들은 무슨 일인가. 냉장고 서랍 속 조미김, 싱크대 속 각종 기름류 들은 유통기한을 종종 넘기고, 냉동실 속 얼린 음식들은 들어간 시기를 알 수 없으니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이 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도대체 왜 이리 물건을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고.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는 것을 병적으로 거부하시는 걸까.


처음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나는 혼자 야심 차게 계획했었다. 저 오래된 이부자리들을 싹 다 버리고, 포근하고 산뜻한 것으로 싹 다 바꿔버려야지. 뚱뚱하고 먼지 쌓인 텔레비전도 버리고, 짝 없는 젓가락들도 다 버려 버려야지. 시장에 가면 싸디 싼 속옷, 양말들을 올 때마다 사 날라야지. 그렇게 살뜰하게 이 나이 든 여자의 집을 싹 다 바꿔 버려야지.

그런데 웬걸, 계획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가 아니라 '부모 이기는 자식 없는' 시댁 가족들을 이해하는 반열에 들어섰다. 나는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길 수 없다. 유통기한 지난 라면 하나, 두유 하나도 우리는 어머니의 허락 없이 버릴 수 없었고, 급기야 명절 뒤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는 몰래 옷가방에 숨겨 서울로 가지고 올라와 버려야 할 상황이 됐다.




그렇게 그냥 '아무도 못 말리는 우리 어머니'로 생각하고 살던 어느 날,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80대에서 90대를 넘고 있는 할머니들은 다 비슷한 성정을 보이는데, 그건 물자와 돈에 대한 순진한 믿음과 고결한 마음가짐이라고. 일제 강점기와 남북 전쟁 시기를 거친 그들에게 물자란 무엇이겠냐고. 그들은 모든 물자에 대해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항상 모든 물자에 악착같은 그들을, 유별난 그들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그냥 봐 드릴 순 있지 않을까 싶다고.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그 지난한 세월을 거친 내 시어머니라니. 그렇담 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상력으로는 절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소설 토지를 보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기억하고 슬퍼했던 내가, 내 집 안에 사는 1933년생을 이해 못 할 리가.


그렇게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게 한 결과,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게 한 결과, 어머니 댁에는 사실 가져올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가면, 자식들이 가면 뭐라도 들려 보내려는 마음이 방망이질 치시나 보다. 그 좁은 집을 종종 돌아다니며, 줄 게 없으면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다 지나버린 조미김이라도 주시려 하고, 말하면서 이미 포장하고 계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찬장 속 50년도 훌쩍 넘은 그릇들을 발견해 버렸다. 너무 예뻐서 나는 바로 말했다.


어머니, 저 이거 가져가도 돼요?
이거? 이거 가져갈래? 그래, 다 가져가라.
나는 혼자 사니까 두 개씩만 있으면 돼.
밥공기도 가져가고 국그릇도 가져가라.


어머님 댁에서 가져온 오래된 밀크 글라스 접시와 스댕 소주잔

그렇게 업어온 빈티지 그릇들. 인터넷에 찾아 보니까 이런 류의 접시를 '빈티지 밀크 글라스'라고 한단다. 옛날 옛적 서울 우유 머그잔, 칠성사이다 머그잔, 그런 것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내가 먼저 뭘 달라고 한 게 처음이어서 그런지, 어머니 목소리에 반가움이 역력했다. "그래?" "이거 가져갈래?"라고 묻고, 의기양양 "그래, 너 가져가라."라고 하셨다.

마치 초등학생 내 아이가 자기 지우개나 연필 따위를 주며 "엄마 회사 가서 써!"라고 의기양양해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가져온 그릇들을 나는 정말 일상생활에 사용 중이다. 저기에 반찬을 담아 먹으며, 저 소주잔에 가끔씩 소주를 한잔 담아 마시며, 그렇게 그분을 생각한다. 생각이라도, 기도라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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