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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일상이 된다

by Agnes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다리가 부실해지니까 자연스럽게 팔과 어깨로 버티게 되고, 그러니 나중에는 어깨가 나가 버리더라고요.


아, 그러셨어요? 다리가 안 좋으세요?


"아, 그게 뭐, 나이가 드시면 자연스럽게 하체가 부실해지니까요."라고 말하면서 슬쩍 얼버무린다. 그리고 슬쩍 화제를 돌린다. 내가 말을 꺼내놓고는 내가 대충 대화를 마무리한다. 왜냐하면 그걸 말하려면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시다는 걸 말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내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니까. 들키게 되니까.


SNS에서 유명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다. 구십 대 후반의 할아버지는 수십 년 간 반복해 온 손에 익은 음식들을 천천히 정갈하게 요리한다. 그리고 그것을 MZ 손녀와 함께 맛깔나게 먹는다. 알콩달콩하다. 나는 자연스레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했던 아주아주 옛날식 두부김치찌개, 그게 생각이 나고 메밀 전이 생각이 난다. 80대 후반의 배우 할머니는 매우 동안이고 매우 총명하다. 머리카락과 얼굴이 하얗고, 체구 자체가 자그마해서 그런지 귀엽고 패션감각이 남다르다. 아주 작은 할머니. 나는 자연스레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키가 150이 채 안 되었던 내 시어머니.


70대 중반에 들어선 내 엄마에게서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곧 여든이 되는 내 아빠에게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항상 말한다. 늙어갈수록 외모가 부모랑 똑같아진다고. 외삼촌에게서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데 나는 미디어 속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거리의 허리가 굽은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무 상관도 없는 할머니들을 볼 때, 나는 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그냥 90 즈음이면 된다. 90 즈음의 노인만 보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닮지도 않았는데.


애도가, 일상이 되었다.


도대체 수많은 애도를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주 어렸을 때 드라마 속 배우가 했던 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배우가 말했다. 그저 나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즤 부모가 애처로워지는 때가 올 거야. 그때 나는 그 대사가 매우 생경했다. 공감이 아니라 생경이었고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이제 해가 갈수록 그 대사는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온다. 양쪽 부모를 다 보낸 내 부모의 마음을 감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노년의 가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애처롭다. 도리없이 조금 젊은 내가, 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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