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더라.
나는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귀에다 대고, 내 말이 들릴지 안 들릴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작은 소리로 약간 목이 메여서 말했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도, 싫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손을 내젓거나 이불을 걷어 치우는 행동 외에 다른 소통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이게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어머니 덕분에 행복했어요.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감사의 말을 전혀 전하지 못했고, 어머니 안 계셔도 열심히 살게요. 도현이 잘 키우고 도현이 아빠 아껴 주면서 정성껏 살게요. 아주버님 가족과도 의좋게 잘 살게요. 그런 약속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이런 것을 깨달을 때, 죽음에도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죽음이 처음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외할머니는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내게는 먼 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일들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고관절이 부러진 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고는 하나 일주일 정도는 식사를 하셨고 그 후 일주일 정도는 유동식을 먹으면서 천천히 의식이 나빠졌는데, 나는 이러다가 결국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어머니 본인은 어땠을까. 그저 이 길고 힘든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그런 생각을 하셨으려나. 참고 또 참으면 곧 끝나리라는 그 희망만을 바라보셨을까.
어머니의 마지막 한 달 정도를 함께 했던 시누이는 통화할 때마다 말한다. 어떤 것이 좀 후회가 되고 또 어떤 것이 좀 후회가 된다고. 이렇게 했더라면 또는 저렇게 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싶고 살아 계실 때 해 드리지 못한 것들이 이제와 후회된다는 말도 한다. 나는 아닌데. 나는 그저 지금 하늘 아래 어딘가에 어머니가 안 계시고,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이 슬픈데. 나는 그저 끝까지 손주 같은 존재였나 보다. 사랑받는 것이 마냥 좋았던 손주 같은 며느리.
딸들은 어머니의 인생을 보는데, 나는 내 인생을 본다. 내 인생의 귀인이었던 분이 사라진 것이, 이제 진짜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