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2주 간 우리는 거리낌 없고 거침없이 요양병원을 드나들었다.
어머니가 새로 배정받은 방은 복도 끝에 있었고 2인실이지만 옆에 아직 환자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 작은 방에는 오롯이 우리 가족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간호사 데스크에서도 우리에게 뭐라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나 많은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드는데, 가서 보시라는 말 외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병원 측의 배려였던 것 같다. 마지막이 오고 있는 환자 가족에 대한 배려.
데스크를 지나 어머니가 계신 곳까지 가려면 긴 복도를 지나야 했다. 그 층의 환자들은 모두 누워만 있었다. 모두 간병인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었고 대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그 긴 복도를 지나면서 나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바로 직진. 그것이 환자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방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침 햇살은 따뜻했다. 그리고 고요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방마다 있는데도 매우 고요했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줄곧 두리번거렸다. 문이 열린 방 모두를 기웃기웃 아주 유심히 보았다. 나는 그런 남편을 나무랐다.
환자들 민망하게, 예의 없이 왜 그렇게 쳐다보고 그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다들 어떻게 관리받고 계신지 알아야지.
남편은 어머니의 다음 단계를 상상했나 보다. 그 말도 맞지만, 나는 민망했다. 이렇게 들여다보이게 내버려 두는 병원 측도 못마땅했고 그 복도를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젊은 우리 부부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도 비현실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커피를 가지러 가는 길에 아니 누군가와 통화를 하러 나가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옆 병실 창 측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제대로 쳐다보게 된 적이 있었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더운지 환자복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계셨는데, 그리고 무릎을 세우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실낱같았다. 아주 가는 다리와 아주 야윈 몸. 모든 것이 말랐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작고 작아져 버린 것만 같았다.
소복이 작가의 책 <나의 열두 살 이야기>를 읽다가 그런 장면을 발견했다.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할아버지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는 이야기.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버린 할아버지가 아기 같았다는 열두 살의 소복이 작가. 열두 살이었기에 아기 같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어머니가 아기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아져 가는 노인들에게 마치 아기처럼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종종 했다. 나이 든 누군가는, 꼼짝없이 아기가 되어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했다. 오롯이 성인 1인분의 돌봄 또는 성인 2,3인분의 돌봄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배가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너무 덥다시며 마지막에는 이불도 거의 덮지 않고 모두 쳐내셨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어머니의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옷을 벗은 몸. 본 적 없이 가늘어진 팔과 다리. 그런 것들을. 가끔 어머니에게 "어머니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라고 말을 건넨 기억이 있다.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면서 어머니는 때로는 살이 빠지고 때로는 살이 찌고 그랬으니까. 그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말했다. "살이 적당히 빠져야 편해. 숨쉬기도 편하고 걷기도 편하고. 나이 들어서 살찌면 못 써." 물론 어머니는 말라도 살이 쪄도 다 괜찮다고만 하셨던 분이지만.
"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
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 그렇니라."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윤석남, 한성옥 <사계절출판사>
오늘 아침. 아침 일찍부터 이 그림책이 생각이 났다.
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 작아지고 작아져서 사라져 버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른 아침, 사라져 버린 어머니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