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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살아 계신 것처럼 말해 본다

by Agnes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남편이 간 곳은 사무실이었다. 장례 진행 절차를 확인해야 했고 부고 문자를 보내야 했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어딜 가야 하나, 이미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서둘러서 달려 내려온 이유는 무엇이었나, 어쨌건 달려는 왔고 그런데 이제 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장례 지도사의 이런저런 귀에 들어오지 않는 안내를 듣고 사무실을 나서는 길에, 시누이와 아주버님(시누이의 남편)을 만났다. 그런데 아주버님은 나와 달랐다.


"그래,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셔?"

그리고 손으로 영안실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여기에 계신가? 지금 들어가 봬도 되나?"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어머니의 몸을 찾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이 멎었다고 해서 내 어머니가 아닌 게 아닌데. 마치 어머니가 살아 계신 것처럼 말하는 아주버님의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눈물이 났고 어머니의 죽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그것은 역으로 위로가 되었고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몸은 지금 여기 나와 같이 한 공간에 있다. 아직은 다행이다. 그리고 동시에 살아 계셔도 돌아가셔도 어머니가 내 어머니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것도 다행이다.


시간이 흘러서 가끔 누군가가 시어머니 또는 시댁의 존재에 대해 물을 때가 있다. 시댁이 서울인지 지방인지 그런 것을 물을 때. 별로 가깝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시부모님에 대한 가벼운 질문을 받을 때. 그럴 때 나는 내 어머니가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저희는 어머니가 서울로 주로 올라오셔서요. 어머니가 도현이 어릴 때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어머니가 저 처음 결혼했을 때 그러셨는데요, 등등. 그리고 살짝, 위로받는다.


나는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시다는 것까지 굳이 말할 필요가 뭐가 있나. 추억은 사실이었고 어쨌든 이미 과거다. 현실은 차차, 천천히, 깨달으면 된다. 그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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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