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맛있게 김치를 드시던 내 어머니

by Agnes

어느 추석엔가 큰맘 먹고 어머니를 안양 우리 집으로 모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두세 시간 차를 타실 만큼 충분히 젊었다는 얘기인데, 기껏해야 십 년 전 일이 아주 아주 오래전 일인 듯하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집을 치우고 음식을 사다 나르고 어머니가 드실 끼니마다 무얼 드릴지 촘촘히 계획했다. 어머니가 덮으실 이불 준비, 집 앞 가까운 음식점 예약, 사돈인 우리 엄마를 잠깐 만나게 할 계획 등 뭐가 그리 손이 많이 가던지. 길어야 하룻밤 또는 이틀밤이었을 텐데 그 외에도 이불을 산다는 둥 베란다를 치운다는 둥 갖가지 것들을 신경 쓴 기억이 난다.

모처럼의 방문이므로, 나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싶었다.


그리고 식사. 고기에 생선에 잡채에 내놓기 부끄럽지 않을 반찬을 번갈아 가며 드렸는데, 글쎄, 어머니는 김치가 너무 맛있다는 말만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워낙 친정 엄마가 하시는 전라도 음식이 맛깔스럽긴 하지만, 사실 나는 시댁인 강원도 음식이 너무나 입맛에 잘 맞는다. 전라도 음식에는 각종 젓갈이 필수로 들어가는데, 강원도 음식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간이 잘 맞고 그래서 맛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치가 그랬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찌나 김치를 맛있게 드시던지. 남편과 나는 의아해하면서 뭐가 그렇게 맛있냐고. 김치가 그냥 김치지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싶어서 재차 물었다. 뭐가 그렇게 맛나냐고.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어머니는 힌트를 주었다. 김장 김치가 왜 이렇게 싱싱하냐고.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항상 김치를 일반 냉장고에 넣어 놓고 드셨다. 살뜰한 시누이가 생김치를 때마다 새로 담가 날랐지만, 혼자 먹는 김치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그래서 곧 맛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가 없으므로 김장 김치는 보관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싱싱한 김치. 김치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썬 김치의 맛. 그 맛을 실로 오랜만에 본 것이다. 그러니 김치가 너무도 맛있을 수밖에.


친정 엄마에게 김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니, 엄마는 너무도 안타까워하면서 한 포기 싸 드리자고 했다. 아니 엄마, 그 김치는 어머니 집에 가면 또 바로 쉬어 버릴 텐데. 아, 그렇구나. 엄마는 피식, 아니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고, 탄식을 했다. 어머니 혼자 사는 집에 김치 냉장고를 들일 수도 없고. 아니 큰 김치통을 열고 닫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분께 김치를 보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아침에 오랜만에 생김치를 주니, 고등학생 아이가 몇 번이고 맛있다 맛있다 감탄을 하면서 먹는다. 맞벌이하느라 바쁜 우리 부부는, 김치 냉장고에 한가득 김치를 쌓아 놓고 먹지만 생김치를 사다 주거나 담가 줄 여력은 없다. 생김치를 너무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솟는다. 고기도 아니고 김치를. 김치 하나를 못 챙겨 줬구나 싶어서.


동시에 어머니 생각이 났다. 김장 김치 먹는 게 별미였던 어머니. 그 쉬운 일이 세상 제일 어려웠던 그때의 우리도. 그래도 찬란했던 충분했던 우리 모두가. 아주 아주 그립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