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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머니가 안 계시다

by Agnes

나는 이번 김장을 시댁에 가서 했다.


항상 엄마 김장할 때 묻어서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엄마의 체력이 예전만 못 했다. 작년에는 김장 준비를 하다가 엄마가 믹서기에 손가락을 다치시기도 했다. 그래서 시누이에게 눈 딱 감고 이렇게 말했다.

저 여기 와서 김장하면 안 돼요?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이제 곧 결혼한 지 20년이 된다. 20년이란 이런 세월인가 보다. 낯설었던 얼굴들에게, 먼저 나서서 김장하러 오겠다고 말하면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그런 시간. 그래서 우리는 동네 잔치 하듯 김장을 했다. 큰 시누이댁에 가서 작은 시누이 가족과 다 같이 함께. 조카도 오고 아주버님 가족도 오고 손주도 오고(나는 서른다섯에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고기를 구워서 먹고 해 주시는 닭백숙을 맛있게 먹고 사간 굴을 함께 쪄서 먹었다.


우당탕탕 그 많은 배추를 다 김치로 만들어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은 후, 근처 유원지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지척에 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케이블카와 출렁다리와 전망대. 모여서 밥 해 먹고 술 마시는 거 말고 모여서 뭔가 다른 걸 하니 너무 좋았다. 사진도 찍고 좋은 풍경도 보고. 수십 번 만나서 밥을 같이 먹은 사이인데, 다른 일을 하니 맛이 달랐다. 그 맛을 이제야 알았다.


지난 금요일 나의 주말 스케줄을 묻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나는 김장에 대해 설명했다. 김장의 계절, 한국인의 11월에 대해. 우리 가족은 김치를 좋아하고 많이 먹는 편이어서 아직 꼬박꼬박 김치를 한단다. 시누이 댁에 다 같이 모여서 김치를 함께 만들어 김치 냉장고에 넣는데, 사실 나는 김치를 스스로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인들이 김장을 하지 않는 추세다. 아마도 나는 김장을 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100포기쯤 김치를 할 예정인데,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보여줄 테니 기대해라.


아파트 말고 시골집에서의 김장이 처음인 나는 모든 게 좋았다. 아주버님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이 너무 맛있었고,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연기 냄새 나는 비닐하우스가 참 좋았고, 고개만 들면 새파란 하늘이 보이는 시골집 마당도 좋았다. 시골 된장을 넣고 끓인 고기도 맛있었고 멀리서 들리는 닭울음소리도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전망대에서, 흔들거리는 다리를 건너느라 다들 배꼽 잡고 웃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시는구나.

완벽한 가을, 다만 그것이 참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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