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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Jan 10. 2024

작은 사상 vs 위대한 사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32

작은 사상 vs 위대한 사랑



불행한 사람을 보면 연민이나 동정심을 갖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그것이 마치 특별하게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여기는 것을 짜라투스트라는 ‘작은 사상 (思想)이라고 하며, 이런 작은 사상은 나쁘다고 말한다. (1) 왜?  나의 동정심을 눈치채고 그로 인해 상대방은 수치심을 갖게 되고, 수치심을 가짐으로써 상대방은 스스로에게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도움으로써 그의 긍지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2)


비극 <오이디푸스>를 보며 관람객들은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된 뛰어난 인물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의 불행에 대해 큰 공포를 느낄 것이다. (3) 만일 이것이 연극이 아니고 현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보고 연민을 느끼며 “아 너무 불쌍해!!” 하며 눈물을 흘릴 때, 오이디푸스의 기분은 어떨까? 그가 고마움을 느낄까?  아니다.  그는 커다란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느낄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런 점에 주목해서 연민과 동정심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상대방에게는 수치심을 일으켜서 좋지 않고, 연민을 즐겨 표현하는 사람은 ‘작은 허위’에 빠지는 습관에 물들어서 좋지 않다는 것이다. (4) 


짜라투스트라는 연민과 동정심에 탐닉하는 ‘작은 사상’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을 하라고 권한다.  '위대한 사랑'은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의 기쁨으로서 시작하고 나 자신의 기쁨으로서 끝난다.  ‘위대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지극한 배려다. 상대방이 스스로 일어나 난관을 극복할 힘을 얻도록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위대한 사랑’이다. (5) 상대방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고, 그가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어서 또한 기쁜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그대가 만일 고뇌하는 벗을 가졌다면 그의 고뇌를 위한 안식처가 돼라. (그의) 전진(戰陣)의 침상이 돼라. 오직 이럴 때만 그대는 (그대의 고뇌하는 벗에게) 가장 유용한 존재일 수 있다. 이리하여 위대한 사랑은 용서도 동정도 극복한다 (넘어선다). "(6)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06f.  동정심과 연민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그의 기독교관(觀)의 핵심이다.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정동호 옮김, p. 146

3.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연민과 공포가 마음에 일으키는 치유현상을 카타르시스 (정화 (淨化))라고 했다. 사실 이런 의미의 '정화'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가!  남의 불행을 보고 비로소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205-206

5.    니체는 정곡을 찌르는 심리적 분석을 한다.  “크나큰 마음의 빚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복수심에 불타도록 만든다.  그리고 사소한 마음의 빚의 경우, 그것이 잊히지 않으면 거기서 쐐기(벌레?)가 생겨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 146

6.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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