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병원과 보호자의 생각이 다를 때
돈과 면회와 일 그리고 불면증과 씨름을 했던 평일이 지나고
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그 사이 아빠의 상태에 긍정적인 내용은 없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똑같은 말만 계속 들었던 터라 특별히 기록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혹시나 이때 당시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만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을 읽으시면 된다.
외출 준비를 하던 도중 엄마가 우리를 불렀다.
”있잖아, 찾아보니까 병원에 성당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갔다가 갈까? “
이제 와서 하는 말이 지만 우리는 천주교 신자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랬다.
성당에 안 간지 10년은 족히 넘어 어디 가서 천주교 신자라 소개하기 민망할 수준이지만, 굳이 종교를 따지자면 천주교 신자가 맞긴 하다.
너무 힘든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매달려보고 싶은 엄마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러자고 말하며 평소보다 일찍 나와 성당에 갔다.
주말, 병원 끝자락에 위치한 성당은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모를 만큼 작고 아담했다. 항상 크고 웅장한 성당에만 다녔던 나에게 이런 귀여운 규모의 성당은 익숙지 않았다. 주말이지만 미사를 드리러 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상이 좋으신 수녀님과 신부님은 신자분들 하나하나 인사하시며 안부를 물어보고 계셨다.
우리가 쭈뼛쭈뼛 들어가자 처음 보는 얼굴에 가볍게 환대를 해 주시며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실로 오랜만에 미사를 봤다.
엄마는 미사를 드리는 내내 울었다. 수녀님이 큰 각티슈를 따로 챙겨주실 만큼 펑펑 울었다.
미사가 끝나고 같은 면회실에 갔다. 토요일인 오늘은 동생이 면회를 가는 날이다.
일주일 중 평일 5일은 내가, 토요일은 동생이, 일요일은 엄마가 면회를 가기로 정했었다.
저 멀리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거리던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반색하며 다가왔다.
우리 둘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보며 갸우뚱했는데 엄마는 그 아저씨를 보고 또 울었다.
(엄마가 자꾸 운다는 말만 해서 죄송하다. 그렇지만 진짜 울기만 했다. )
알고 보니 나도 성함은 익히 들었던 아빠의 대학교 동창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동창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며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우리 가족을 불렀다.
”환자의 간 수치가 너무 이상하리만치 높아져서 정밀 CT를 한 번 찍어보려고 합니다. “
만일 간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수치가 높아진 거면 시술을 통해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것이라면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만약 약물 부작용인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면 애들 아빠 집으로 데리고 가도 되나요? “
엄마가 대뜸 아빠를 집으로 데리고 가도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우리 남매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는데 그럼 남은 시간이라도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누구보다 아빠의 회복을 바라는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아빠와의 마지막을 준비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단칼에 지금 밖에 나가면 2차 감염의 위험이 너무 높아서 허락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적막으로 가득 찼다. 차 안에 구비해 놓았던 티슈는 텅 비어버린 지 오래다.
엄마는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아프면 안 돼. “
나는 당최 사근사근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엄마의 말에 톡 쏘듯이 대답을 했다.
”왜 거기서 엄마는 빼? 다 같이 아프면 안 되지. “
어딜 가나 이 말투가 문제다. 내 기필코 고치고 말리라 속으로 반성하며 다시 대답했다.
”우리 다 건강 검진도 잘 받고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가기야. 알지? “
엄마는 알겠다고 말하며 텅 비어버린 티슈각을 뒤적거렸다.
우리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동생은 조용히 자신의 옆에 있던 티슈를 엄마에게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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