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선택의 순간
주치의 선생님께 간 CT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토요일 저녁.
동생은 일을 하러 지방으로 내려가고 남겨진 두 모녀는 절반만 켜진 집안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생각해 보면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후로 우리 집 불은 항상 절반만 켜져 있었고, 통하는 게 많던 엄마와 나는 언제부터인지 가벼운 농담조차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적막 사이로 전화벨이 울렸다.
02로 시작하는 번호.
중환자실이었다.
우리는 놀란 마음에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CT 결과가 나왔는데 구조적인 이상은 없습니다. “
결국 약물로 인한 부작용과 염증이 아빠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는 말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제는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 환자분의 경우 워낙 희귀하기에 사례도 나와있지 않아 별 다른 방법이 없어요. “
해드릴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수도 없이 들었다.
그놈의 없습니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이제는 없습니다 단어만 들어도 신물이 났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의사 선생님들도 최선을 다해주었는데 왜 그리 과격하게 말하냐 하겠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병원에 갔는데 가는 족족 없습니다, 못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런 말만 들으니 나중에는 누구에게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만 쌓여갔다.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해주겠는데 방법이 없어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한다니 너무 답답했다.
그 사이 주치의 선생님이 답지 않게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완전 여장부 스타일이시다.)
”논문을 찾다가 지금 환자분께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았는데, 투석 아시죠? 근데 이제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투석과는 다른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는 염증을 걸러주는 투석입니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
아빠의 현재 염증수치는 100
건강한 일반인이라면 염증 수치는 0이다.
염증과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망가트리고 있는 지금 염증 수치가 더 높아져 패혈증이 오면 그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직 패혈증이 오지 않은 지금 투석기를 사용해 염증 수치를 낮추어보자고 했다.
일단 2~3일을 돌려보고 경과를 본 다음 경과가 좋으면 더 돌려보고 아니면... 정말 정말 방법이 없다고..
”다만.. 이 투석이 온전히 본인 부담이라 하루에 몇백만 원이 듭니다. “
아 이래서 선생님이 그렇게 뜸을 들이셨구나. 선생님의 행동이 단번에 납득이 가는 금액이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금액을 듣더니 손사래를 치며 단칼에
”못합니다 “라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 투석기 지금 딱 한 대 남았어요. 만약 보호자분이 취소하시면 다음 차례로 넘어갑니다. 그때는 하고 싶어도 못해요. 그래도 안 하시겠어요? “
엄마는 다시 못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전화기를 뺐어 저희가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전화를 드려도 되겠냐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시간이 없으니 빨리 알려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왜 못한다고 그래!!!"
아빠가 아픈 이래 엄마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었다.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부담만 안겨주면 너희는 어떡하라고 그래.”
그렇다. 엄마는 아빠가 죽고 난 뒤에 남겨질 자식들이 걱정이었다.
좋아지면 다행이지만
더 나빠지면?
별 다른 효과가 없다면?
그래서 아빠가 이대로 죽는다면?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되었다
그 모든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시도하기엔 도저히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완강했다.
자식의 입장에서
엄마가 혹은 아빠가 인생의 동반자의 삶을 포기하겠다고 할 때의 기분을 아는가
정말 무섭다.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없이 무섭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지난밤 엄마와 함께 계산했던 우리 집의 재정 상태와 그딴 건 둘째치고 어떻게든 엄마를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부딪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아빠의 생명을 놓고 선택을 요구당하는 거지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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