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을 시작합니다.

19 ) 투석 첫째날 - 긍정의 말보다는 욕?

by 김 고운



첫 문장부터 남발하는 TMI 지만

우리 가족 중에 핸드폰을 제일 잘 보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빠 = 동생 > 엄마 > 나이다.

특히 나는 핸드폰을 아예 무음으로 해놔서 누구에게 연락이 와도 잘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

이 말을 왜 하냐면 투석을 시작한 이후로 핸드폰을 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투석을 하는 내내 오전 9시만 되면 주치의 선생님에게 항상 전화가 왔다.

전날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투석을 계속 진행해도 되는지 여쭤보셨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못할까 오전 9시가 다가오면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환자실 전화번호가 뜨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비용이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전화가 온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였기에 내심 매일 전화벨이 울리기를 바랐었다.






투석 첫째 날은 평일이었다.

어김없이 병원 안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헐레벌떡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나는 매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면회를 갔다.)

누구보다 빠르게, 마치 출근시간 1분을 남겨놓은 회사원 마냥 일회용 방역복을 입고 아빠가 있던 자리로 가는 나를 보라색 옷을 입은 수간호사님이 붙잡으시며 아빠가 격리실로 옮겼다고 이야기했다.

당황해하며 더 안 좋아진 건지 불안해하는 날 보시고 투석기가 크기도 하고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감염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격리실로 옮겼다며 부드럽게 설명해주시는 수간호사님이 이끈 곳은 격리실 중에서도 맨 끝방이었다.



문을 열자 그 앞에 우뚝 버티고 서 있는 초록색 기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투석기였다.


그 옆으로 고개를 내밀자 퉁퉁 불은 얼굴로 앉아있는 아빠가 보였다. 여전히 아빠는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코엔 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열은 40도에서 내려갈 줄을 모르고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거기에 더해 이제 기침을 할 때마다 투석기에서 소리가 났다.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소리를 듣고 간호사님들이 오셨다.

왜 소리가 나는지 물어보니 기침을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서 피가 역류할 수 있어 소리가 나는 거라고 했다.


"아빠!"

아빠를 부르며 다가가자 아빠가 눈을 힘겹게 뜨며 소리가 난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투석기 하고 있어? 잘했네."

"응. 어제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해 주셨어. 그래서 하겠다고 했어. 근데 이거 비싸대."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똑같은 소리를 한다.


"괜찮아. 아빠 통장 깠어. 아빠 돈 많던데? 나랑 엄마랑 지운이랑 아빠 꺼까지 합치니까 우리 부자야."


아빠는 그 말을 듣더니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늙으면 엄마랑 같이 쓸려고 열심히 모아놨어. 근데 그걸 이런 데다가 다 써버렸네. 내가 다 망쳤어."

아니라고 하기에는 정말 여기에 다 쓴 게 맞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문뜩 인터넷에서 환자에게 힘들지, 많이 아프지, 이런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말을 해주어야 환자도 삶의 의지가 생긴다는 글을 본 게 기억이 났다.


"그래도 아빠 인공호흡기 할 뻔했는데 잘 견디고 있는 게 어디야. 아주 대견해. 그리고 아무것도 못해준다고 했는데 투석기라도 해보는 게 어디야. 그렇지? 우리 없을 때 불안하다 무섭다 하지 말고 저 투석기에 염증 다 걸러서 없어져버리라고 생각해. 간이랑 폐한테도 이쯤 되면 정신 차릴 때가 됐으니까 고만하고 이제 일 하자고 아주 세뇌를 시켜버려 아빠. 알았지."


표현이 좀 과격한가 싶지만 원래 긍정적인 말보다는 욕이 더 잘 기억나고 빨리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뇌구조를 이용한 영리한 방법을 사용한 거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날 나는 아빠의 머릿속에 있는 부정의 싹을 뽑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염증 걸러져라

간이랑 폐야 정신 차려라

나는 건강해진다


이 말들을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말하는 걸 연습시키는데 면회시간을 다 써버렸다.







스티븐 존슨 증후군 | 질환백과 | 의료정보 | 건강정보 | 서울아산병원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TEN) - 피부 질환 - MSD 매뉴얼 - 일반인용

-스티븐 존슨 증후군과 독성표피 괴사용해의 차이점




keyword
이전 19화거지 셋 보다는 거지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