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심해 속을

8 ) 또다시 한번

by 김 고운


“보호자분 이게 스티븐존슨 증후군이라는 건데요”

담당 간호사님이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대부분이 우리가 흔히 먹는 약물에 의해 유발되는 심각한 급성 피부 점막 전신 질환이라는 문장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약물..? 약이요...? 지금 아빠가 무슨 약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건가요...?”

담당 간호사님은 고개를 저으며 지금으로서는 저희도 알 수 없다며 반드시 상급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셨다. 그렇게 난생처음 들어보는 질병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욱여넣고 있는데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렸다. 내 핸드폰인가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담당 간호사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시며 전화를 받으러 병실 밖을 나가셨다.


“고운아, 아까 간호사님이 이야기하신 게 뭐야?”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피부 질환이라고 나오는데... 좀 더 읽어볼게.”

“다른 병원에 가야 한대?”

“응. 다른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해야 하나 봐.”

“다른 병원에 갈 수는 있대?”


말문이 막혔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S병원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옆에서 봐온 아빠였기에 쉽사리 그렇다는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열심히 알아봐 주고 계신대.”

“그래.”

아빠에게서는 더 이상의 질문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순간 그 고요한 정적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희망이라고는 한 포기도 자라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메마른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똑 똑

정적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며 담당 간호사님이 들어오셨다. “죄송해요.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병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단 말인가? 나는 눈을 번뜩이며 담당 간호사님께 말했다.

“병원이요?”

기대로 가득 찬 내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나의 얼굴을 본 간호사님은 쓰게 웃으셨다.

“네. 아침에 F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소견서랑 자료를 넘겨드렸거든요. 그런데 지금 안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렇구나. 기대로 가득 찼던 마음에 비해서 실망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많은 거절의 말을 들어왔던 탓일까.


“어제 피검사 나온 후부터 계속 서울에 있는 상급병원에 트랜스퍼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있어요. 오전 회진 때 설명드렸다시피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 맞다면, 2차 감염이 되기 전에 치료도 받고 검사도 해야 하는데 저희 병원에서는 해당 치료나 검사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 병원보다 상급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요즘 입원 자체가 어렵다 보니까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주기 힘들다거나 무조건 외래 진료로 예약을 해야 봐줄 수 있다는 답변만 들리네요.”

담당 간호사님은 한숨을 쉬시며 재차 말을 이어가셨다.

“아무래도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라는 병 자체가 워낙 희귀 질환이라서 다른 병원에서도 받기가 힘든가 봐요.”

아니, 안된다.

다음날은 한글날. 휴일이었다. 그 모든 것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아빠에게는 없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휴일과 주말이 없었다면 결과를 듣는데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많은 휴일이 너무너무 미웠다. 병원과 병원과의 연결로도 다 거절당하는 지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선생님, 저도 전원 가능한 병원 같이 알아봐도 될까요?”

그렇게 나는 다시 아빠를 살려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헤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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