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과 후회 속에서

9 ) 여전히 그 사이 어딘가를 헤엄치며 살아갑니다.

by 김 고운


담당 간호사님께 정보를 넘겨받고 격리실에서 나와 병원 복도에서 무작정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담당 간호사님이 주신 정보에 의하면 현재까지 그나마 긍정적인 답변을 준 병원은 H, K 병원. 이 마저도 환자가 직접 오기 어렵다면 대진으로라도 진료를 봐줄 수 있다는 답신이 왔다고 했다.

이게 긍정적인 답변이라니, 너무 답답했다.




먼저 10월 4일에 당일 진료 당일 입원을 해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던 H병원에 전화를 했다.

사실 S병원으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을 때 뒤늦게 H병원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입원이 가능하다고.

그때의 나는 가장 세브란스나 아산병원 서울대 흔히 말하는 3대 병원이 아니라면 어디가 상급 병원인지에 대한 개념도 명확하게 알지 못했고, (무지하다고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 그 정도로 관심이 없었던 건 사실이니까.) 가장 먼저 연락이 온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H병원을 거절했었다. 그 병원이 상급 병원인지도 모르고.


나는 지금도 그때 H 병원으로 갔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하는 후회 속에 산다.


없는 인내심을 긁어모아 기나긴 안내음성을 기다린 끝에 H 병원 상담원과 연결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금 저희 아빠가 S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여기 H병원에서 대진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서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가 대진이 가능하다고 했냐며 나를 나무라는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반 예약도 어려운 요즘 누가 대진이 가능하다는 말을 해주겠는가. 믿지 못하는 상담원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상황을 설명하며 대진이 가능하다는 답변까지는 받았는데 아빠가 대진 날짜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다. 혹시 당일 진료를 어렵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거절이었다.

상담사를 탓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때 나의 상황이 너무 야속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거절을 당해도 그냥 계속 말했다.

“10월 4일에 아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당일 진료 당일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을 때 가능하다고 답변을 받았었어요. 근데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한 번만 더 물어봐주세요.”


웬 보호자 하나가 전화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맞다.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상담사는 내 말에 전화 기록을 찾아보시더니 10월 4일에 나와 병원이 전화한 기록이 없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어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온 병원의 이름을 헷갈릴 리가 없었다.

단 두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 핸드폰 전화 목록을 찾아 불러주면서 분명히 전화를 했고 그 뒤에 답신을 받았지만 상황이 너무 급해 S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 나중에 다시 전화드려도 되는지 물어보니 된다고 이야기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었을 때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말했던 것 같다. 나의 끈기가 통한 걸까, 상담원은 고민을 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아빠의 의심 병명과 상황에 대해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한 뒤 기다려 보시라며 전화를 돌리셨다.


“여보세요?”

잠시 뒤 상담원이 전화를 다시 연결하셨다. 돌아온 답변은

“지금 우리 병원에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치료해 드릴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어렵다고 하시네요.”

명백한 거절이었다.

“어쩌죠...” 하시는 상담사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

괜찮다. 담당 간호사님도 언급하셨던 이야기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다음 K병원에 전화를 했다. 마찬가지로 누가 대진이 가능하다고 했냐며 나를 나무랐다. H병원에 전화를 했을 때보다는 침착해진 마음으로 설명을 하니 이번에는 요양급여의뢰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서류를 보고 답신을 주시겠다고. 뜻밖의 긍정적인 소식에 나는 알겠다며 요청 서류를 손바닥에 아무렇게나 쓴 뒤에 담당 간호사님께 전화를 했다.


H병원의 답변은 의외라는 듯 이야기를 하셨지만 K병원의 소식은 잘 되었다며 서류를 다 준비되어 있으니 K병원으로 바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서류에 대해 주고받던 도중 담당 간호사님이

“어? 보호자분 잠시만요, 병원에서 전화가 왔네요!” 하며 다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잠시 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보호자님! D 병원에서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당일 트랜스퍼로 해주시겠다고 해요!”

이틀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거절 뒤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많은 감정들이 덩어리 져 목에 걸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인사를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여가며 혼자 되뇌었다.






이 기쁜 소식을 아빠에게도 어서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개선장군처럼 격리실이지만 격리 환자가 없는 격리실 문을 벌컥 열고 아빠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우리 다른 병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대!”

아빠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어디?”

“D병원.”

“거기 가면 살 수 있나?”


개선장군 취소다.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눈물부터 보이는 사람은 장군 실격이다. 격리실에 있는 동안 아빠 앞에서 만큼은 울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때만큼은 눈물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거기가 아빠 살려준대, 가야지, 아빠 살려준대, 가야지.

나는 고장 난 비디오처럼 벽에 기대앉아 엉엉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빠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더듬더듬 나를 찾다가 물기 어린 내 목소리를 듣고 같이 울었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는 늘어진 테이프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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